주갑은 연추에 오면 정호네 집에서 지낸다. 옛날 김훈장처럼. "저기 오누만." 주갑의 눈은 당장 새우눈이 되고 눈 가장자리에 잔주름이 왈칵 모인다. "어련할라구요?" 아이 엄마는 빨래를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일곱 살 먹은 사내아이와 다섯 살짜리 계집애가 손을 흔들며, 마치 바람개비처럼 달려온다. "할아버지이! 할아버지!" 주갑은 양 무릎을 벌리고 주저앉는다. 날개처럼 긴 팔을 벌린다. 계집아이가 총알같이 달려와 품에 안긴다. 사내아이는 목에 팔을 감고 늘어진다. "아니고매, 할아부지 엉덩방아 찧겄이야." 아이들은 킬킬거리고 새처럼 재잘거린다. "밥 잘 먹고 잘 있었지라?" "네!" 두 아이를 앞으로 몰아 머리를 쓰다듬는다. "할아부지 이번엔 일찍 왔네?" "암, 숙이가 보고 접어서 한달음에 갔다 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