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글쓰기 본보기 15

'언어의 묘미'의 예, 바다의 일출 - 이외수 편

도시를 벗어나니 곧 차창 밖으로 바다가 내다보였다. "아!" 하고 감탄하면서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것은 일찍이 눈으로 직접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거대하고 충격적인 괴물이었다. 시커먼 등 비늘을 번들거리며 새벽 미명 속에 가로누워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도대체 어디가 머리이고 어디가 꼬리인지 분간할 수 조차 없을 정도였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면서 그 괴물은 차츰 형태를 자세히 드러내기 시작했고 나는 그야말로 광대무변이라는 것을 피부로 직접 실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일출이고 뭐고 우선 생전 처음 보는 바다의 모습에 매료되어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었다. 이게 바다로구나, 이게 바다로구나, 마음 속으로 자꾸 그렇게만 되뇌고 있었다. 하늘이 서서히 붉어지고 있었다. 하늘의 빛깔에 따라 바다..

'언어의 묘미'의 예 - 이외수 편

O 때때로 바람의 완강한 팔뚝에 머리채를 움켜잡힌 채 한 줄로 서서 쓰러질 듯 쓰러질 듯 버티고 있는 가로수들, 이따금 날개를 접질리운 새들처럼 휴지들이 높이 솟구쳤다간 곤두박질을 치고 있었다. O 내 잠의 막은 언제나 얇고도 희미해서 현실과 잠사이에 가로놓인 한 장의 미농지 같았다. 비록 잠들어 있는 상태라 해도 항시 잠 바깥에 있는 것들이 막연하게 잠 속에 비쳐 들어와 어른거리곤 했다. O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한없이 풍성하게 부풀어올라 햇빛 속에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새로 따낸 목화송이를 잘 손질해서 하늘에 가득가득 쌓아놓은 것 같았다. 나는 그 푹신한 곳 깊숙이 뛰어들어 끝없이 깊은 잠에 빠져들고 싶었다. O 비는 아주 지리한 소리로 땅을 적시고 있었다. 영원히 그 템포를 잃지 않고 지리하게지리하..

'감정이입'의 예

소설을 읽을 때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인문교양서나 과학책 저자에게도 감정을 이입할 수 있어요. 1장에는 최초로 지구의 크기를 측정하는 데 성공한 인물이 나옵니다. 2,200년 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관장이었던 에라토스테네스입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몇 가지 가설과 논리적 추론, 원시적인 거리 실측, 그리고 간단한 기하학 지식을 활용해서 지구 둘레가 4만 킬로미터 정도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간단하게 요약해 보겠습니다. 1. 태양은 아주 멀리 있기 때문에 태양빛은 지구 표면 전체에 평행으로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2. 하지인 6월 21일 정오 시에네라는 곳에는 수직으로 꽂은 막대기에 그림자가 없는데 알렉산드리아에는 그림자가 생기는 것으로 보아 지구는 둥글다고 보아야 한다. 3. 하인을..

'콘텍스트 살피기'의 예

발췌 요약을 멋지게 하려면 텍스트만 볼 게 아니라 콘텍스트도 함께 살펴야 한다. 를 요약하면서 작가가 중요하게 여긴 콘텍스트는 이런 것이 있다. (1) 솔제니친은 실제로 겪은 일을 소설로 썼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시기에 군 복무를 하던 중 친구한테 쓴 편지에서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여러 해 동안 정치범 수용소에 구금되었다. (2) 스탈린이 사망한 후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불합리한 개인 숭배와 가혹한 철권통치를 바로잡으려는 목적으로 이 소설 출판을 허용했다. (3) 소련작가동맹 기관지 편집장이었던 작가 트바르도프스키는 위대한 작가의 탄생을 확신하고 소련 공산당 지도부를 설득해 이 소설을 잡지에 실었다. 이런 정보는 소설 안에 없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을 알아야 솔제니친이 말하려고 했던 게 ..

'군더더기 없애기'의 예

다음은 초판 다섯 번째 '대공황'편에서 가져왔다. 문장을 단문으로 바꾸고 접속사를 최대한 생략했다. 조사 '의' 남용을 비롯해 어색한 문장 요소는 그대로 두고, 복문을 단문으로 바꾸는 데에 따라 꼭 고쳐야 하는 것만 살짝 손을 보았다. 문장을 끊은 것 말고는 크게 바꾼 게 없다. 하지만 글의 분위기는 제법 크게 달라졌다. O 원래 글 인류에게 불의 저주를 퍼부은 첫 번째 제국주의 세계전쟁이 끝난 후 세계는 다시 '영원한 번영의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 것 같았다. 패전국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전쟁배상금 때문에 어려움에 처했고 아시아 아프리카의 식민지 종속국 민중들은 변함없는 제국주의의 억압과 수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지만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은 눈부신 경제적 부흥을 이루었다. 치열한 군비 증강..

'우리 말 이름'의 예

옛날 우리의 선조들은 그들이 살던 마을, 바라보는 산, 골짜기와 내들의 이름을 모두 지었다고 했다. 그 이름들은 말할 것도 없이 순수한 우리말 이름이다. 마을 뒤 골짜기에 가재가 많이 나면 가재골이라 했고, 나비가 많다고 나비실이라 했다. 밤나무가 많으면 밤나무실, 박달나무가 많으면 박달골이라 이름을 붙였다. 대나무가 많아서 대뫼라고 하는 마을도 있다. 얼마나 자연스럽게 아름답고 부르기 좋은 이름인가? 그런데 중국글자를 숭상하던 양반들은 이런 마을 이름들을 중국글자 말로 지어 붙였다. 양반들이 새로 지어 붙인 마을 이름에는 대개 큰 마을 뿐이었는데, 일본 놈들이 침략해 들어와 총독정치를 하고부터는 모든 마을 이름을 중국글자로 지어 불렀다. 총독이 한 이런 짓은 우리 양반들도 환영하는 바가 되어 그러부터 ..

'어감(말의 맛)'의 예

다음은 지난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한 헌법재판소 결정문 결론의 한 단락이다. 밑줄 그은 부분을 잘 살펴보기 바란다. O 정견의 자유를 누리는 정당이라면, 자신들의 대안을 통해 현재보다 진일보한 국가공동체의 미래상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지배적인 관념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현행 헌법상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포함된다고 인정되는 내용들이라 하더라도 그에 대한 정치적 대안을 제시하여 사회적 논의를 시도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한 공당의 성실한 자세로서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라면 어떤 정당이 정치적 견해를 개진하는 과정에서 다소간 민주적 기본 질서와 상치되는 주장을 제시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즉, 민주적 기본 질서의 내용으로 간주되는 개별 요소들에 ..

'줄거리 요약'의 예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데뷔작 를 읽고 줄거리를 200자 원고지 석 장으로 요약해보라. 그런 다음 그것을 솔제니친 스스로 요약한 것과 비교해 보라. 아래는 마지막 단락을 원본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 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절을 잘 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