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낙은 자신들도 모르게 마을 길에 멈추어 선 채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 일도 그 일이고 복동네는 낳지만 않았다 뿐이지 그래도 공이 든 자식이라 어미가 당한 수모, 분풀이를 해줄 줄 알았는데 며누리가 수수밭 얘기를 뒤집어씌운 것은 제쳐놓고 그 늙은이 한 말이 사실이 아닌가 의심을 했다는 깁니다. 며누리도 역시나 그 말을 믿고, 그것이 더 서럽고 억울했던 모앵이라요. 남의 자식 소용없다, 내가 헛살았고, 신령이 어디 있노, 이 세상에 믿을 것 하나 없다, 몇 분씩이나 그런 말을 하더니만 기여,"
길섶 풀밭에 풀벌레가 울어쌓는다. 마당쇠댁네는 숫제 길바닥에 주저앉아버린다. 논둑길을 아이들이 소를 몰고 돌아간다. 방울 소리, 또 개구리 울음, 후덥지근한 강바람, 길바닥에 주질러 앉은 마당쇠댁네가 흐느껴 운다.
"남의 일 겉지가 않소. 임자가 있었다믄 갬히 누가 그런 말을 했겄소.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위해서 그리 애발스럽기 살라고 나부대었는고. 참말이제 남의 일 겉지 않소. 으흐흣흣...... 혼자 사는 것도 뼈가 저리게 설운데, 이놈의 세상, 머릿기름 한분 바릴라 캐도 남의 눈치 보고, 옷 한분 갈아입을라 캐도 남의 눈치 보고, 아무렇게나 하고 다니믄 또오, 남정네를 보믄 마주칠까 길을 돌아가고, 이것저것 귀찮아서 남을 기하고 살믄 신들맀다 카고, 말도 많고, 어이구 과부 팔자, 직일 놈 살릴 놈 해도 가장 겉은 그늘이 또 어디 있겄소."
"와 아니라, 벽을 지고 있어도, 그러이 악처보다 효자가 못하다는 말이 안 있나.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진기라."
"우짜다가 이웃이라고 안쓰러워하믄 남의 남정네기 따문에 고마우믄서도 모린 척하고, 마구잡이로 나오믄은 임자 없는 하시려니, 안 그렇십디까, 야무어매,"
"마찬가지다. 늙으나 젊으나,"
"여자끼리는 우떻고요? 같은 여자믄서, 아이고 시장스럽어라. 제 임자 누가 뺏아가까 봐서, 손이야 발이야 빌어도 어림없는 것을 두고, 그럴 때는 오장이 틀어져서 속앓이를 한다 카이. 덮어놓고 흘뜯고 몹쓸 년을 맨들어놔야 맴이 놓이는가. 누가 우쨌기에, 가만히 있는 사람을."
마당쇠댁네는 울분이 한꺼번에 터진 것 같다. 쌓이고 쌓인, 참고 견딘 분통의 둑이 터진 것 같다. 조신하고 말수 적었던 여자가 미친 듯이 지껄여대는 것이다.
"엎어진 놈은 발로 걷어차고 그런 인심이 아니더믄 복동네가 죽었겄소?"
"죽자 사자 길쌈을 해서 봄이믄 젤 많이 베를 냈제. 그래서 시기도 받았네라."
"야무어매."
"와."
"생각해본께 그냥 있일 수 없는 일이오."
"내 말이 그 말이다."
"그놈의 늙은것한테 무신 봉변을 당해도 좋소. 나 나설라요, 사람이 죽었는데."
마당쇠댁네는 성난 닭처럼 푸르룩 일어섰다.
*애발스럽다 : 애면글면하다. 힘겨운 일을 이루려고 온 힘을 쓰다.
토지 11권 77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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