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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요약

숨겨라! 백정은 남의 집 문지방 너머로 한 발자국도 들어가지 못한다. 백정 집안은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하지 않는 것이 예의다. 백정이라는 이유로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에서 쫓겨날 수 있고, 여인숙에서도 쫓겨 날 수 있다. 백정은 보통사람과 같은 묘지에 묻힐 권리가 없다. 백정은 사람이 아니다. 백정은 사족, 네 발 달린 짐승이다! 주인공 세가와 우시마쓰는 백정이다. 아버지는 세상에 나가 출세하려는 백정 자식의 비결-유일한 희망, 유일한 방법, 그것은 오직 자신의 신분을 감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숨기는 것은 죽고 사는 문제다. 젊은 우시마쓰는 사범대학을 나오고 유능한 교사로 인정받고 있기에 어떤 경우에도 이 소중한 훈계만은 깨뜨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노코 렌타로도 백정이다. 우시마쓰보다 이른 시기에..

9 두만아비의 아들 부탁

저녁이 끝나고 두만네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데 모깃불을 피워놓고 곰방대를 물고 있던 두만아비는 슬그머니 일어섰다. 삽짝을 나서려 하자 부엌에서 두만네가, "어디 가요?" 하고 물었다. "음." "밤이 저물어도 사돈이 오시믄 우짤 기요?" 그러나 두만아비는 아무 말 없이 나간다. 마을 정자나무 옆을 지나서 언덕을 올라간다. 외딴 언덕 위에, 윤보가 사는 초가의 모깃불이 보였다. "거기 오는 기이 누고." 윤보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나다." "나라니?" "이평이다." "짚세기나 삼을 일이지 머하러 왔노." 거적을 깔아놓고 마당에 누워 있던 윤보는 부시시 일어나 앉는다. "와 오믄 안 되나?" "우리 집이사 사통팔방이니께, 금줄을 칠라 캐도 삽짝이 있이야제. 산짐승도 오는데 사람 못 올 기이 머..

8 임이네의 출산

방 안에서 임이네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녁이 좀 들어와야겄소." "내가?" "그라믄 우짤 기요? 이 차중에 아무도 없이 우찌 아일 낳을기요?" "내, 내가." "그, 그라믄 우짤 기요? 누구 자식인데 이녁이 그러요!" 화내는 소리에 용이는 더듬듯 마루를 올라선다. 방문을 연다. 문바람에 등잔불이 흔들렸다. 벽을 짊어지고 앉은 임이네는 무서운 눈으로 용이를 노려본다. 머리를 벽에 부딪으며 임이네는 소리를 질렀다. 진통이 오는 모양이다. "아이구우, 어매! 나 살리주소!" 두 손을 쳐들고 허공을 잡는데 이빨과 이빨이 부딪는 소리가 들렸다. 눈알이 튀어나올 듯, 이마에서 두 볼에서 구슬땀이 솟아나온다. 임이네는 앞으로 넘어져 오며 두 팔로 용이 정강이를 안는다. 여자의 팔은 쇳덩이같이 단단했다. 두 팔은 용..

1부 4편 역병과 흉년

나귀에서 내린 조준구는 뻣뻣하게 힘을 주며 목을 돌려 돌아본다. 뒤따르던 초라한 가마 두 틀이 멋는다. 가마 속에서 나온 여인은 삼십오륙 세쯤 돼 보이는 조준구의 부인 홍 씨였다. 안 오겠다는 것을 감언이설로 얼러가며 여기까지 데려왔다. 다른 가마에서는 사내아이가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데 창백한 얼굴에 눈은 무섭게 큰 꼽추였다. 조준구는 윤 씨 부인에게 생계가 막막하여 내려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윤 씨 부인은 뒤채에 머물게 한다. 이 무렵 김서방은 각 처에 있는 최참판댁 농토를 돌아본다. 올해 수확을 예상하기 위해서다. 소나기를 피하고 얼마 되지 않아 햇볕은 쏟아지고 별안간 김서방 속이 울렁거린다. 마지막 행선지 용수골을 떠날 때는 속이 뒤집힐 것 같이 고통스러웠다. 최참판댁에 당도한 것은 밤이 이슥했을 때..

우리 동네 우리 말 이름 알아보기

중국글자 말이 아닌, 일본말, 서양말도 아닌 내가 사는 이곳의 우리말 이름을 알아보고 싶다. 집에서 출퇴근하는 지하철역은 '돌곶이역'이다. '돌곶이'는 서울지명사전에 '성북구 석관동에 있던 마을로서, 인근 천장산의 한 맥이 수수팥떡이나 경단을 꽂이(꼬챙이)에 꽂아 놓은 것처럼 검은 돌이 박혀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돌곶이마을, 돌곶이말, 돌곶이능마을, 돌곶이능말, 석관동으로도 불렸다'고 나온다. 또는 우이천이 이곳을 흐르면서 지형이 곶이 되어 물이 돌아 흐르면서 돌곶이라는 땅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돌곶이'의 유래를 보면 동쪽의 천장산과 산줄기와 군데군데 놓여진 돌의 모습까지 상상이 된다. 기막힌 은유의 표현이다. '-말'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을'의 준말로 보인다. '-능 마..

조각글쓰기 2022.05.04

감정이입

글을 쓸 때에는 독자가 쉽게 이해하고 깊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 글로 남의 공감을 받으려면 타인의 생각과 시선과 감정으로 자신이 쓴 글을 살펴봐야 한다. 독자가 깊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도록 글을 쓰려면 그렇게 쓰겠다는 마음가짐을 하고 그렇게 쓸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독자가 감정이입을 하기 좋게 글을 쓰는 능력은 첫째, 텍스트 자체만 읽어도 뜻을 알 수 있도록 써야 한다. 사전이나 참고 문헌을 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도록 독자가 어려워하는 전문용어나 외국어 사용을 삼간다. 되도록 쉬운 어휘와 소박한 문장을 쓴다. 어쩔 수 없이 전문용어나 어려운 이론을 사용해야 할 때는 그 의미를 알아내는 데 필요한 정보를 텍스트 안에 티 나지 않게 집어넣는다. 둘째, 텍스트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자기소개서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인문학의 중심을 꿰뚫는 질문이다. 제대로 살아가려면 끊임없이 내가 누구인지 물어야 하고,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어떤 대답을 찾아야 한다. 자기소개서는 이 질문에 대답하는 글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미래의 나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려는지 말하는 글이다. 이만큼 중요한 글쓰기 주제도 달리 없다. 자기소개서가 품격 있는 장르가 아니라는 통념은 잘못된 것이다. 글쓰기가 일반적으로 그러하듯, 자기소개서도 모범 답안이나 정답은 없다. 그러나 잘 쓴 자기소개서와 그렇지 않은 자기소개서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떤 것이 '잘 쓴 자기소개서'일까? 자기소개를 할 때 두 가지를 반드시 챙겨야 한다. 첫째, 내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살기를 ..

'콘텍스트 살피기'의 예

발췌 요약을 멋지게 하려면 텍스트만 볼 게 아니라 콘텍스트도 함께 살펴야 한다. 를 요약하면서 작가가 중요하게 여긴 콘텍스트는 이런 것이 있다. (1) 솔제니친은 실제로 겪은 일을 소설로 썼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시기에 군 복무를 하던 중 친구한테 쓴 편지에서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여러 해 동안 정치범 수용소에 구금되었다. (2) 스탈린이 사망한 후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불합리한 개인 숭배와 가혹한 철권통치를 바로잡으려는 목적으로 이 소설 출판을 허용했다. (3) 소련작가동맹 기관지 편집장이었던 작가 트바르도프스키는 위대한 작가의 탄생을 확신하고 소련 공산당 지도부를 설득해 이 소설을 잡지에 실었다. 이런 정보는 소설 안에 없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을 알아야 솔제니친이 말하려고 했던 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