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췌 요약을 멋지게 하려면 텍스트만 볼 게 아니라 콘텍스트도 함께 살펴야 한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요약하면서 작가가 중요하게 여긴 콘텍스트는 이런 것이 있다.
(1) 솔제니친은 실제로 겪은 일을 소설로 썼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시기에 군 복무를 하던 중 친구한테 쓴 편지에서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여러 해 동안 정치범 수용소에 구금되었다.
(2) 스탈린이 사망한 후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불합리한 개인 숭배와 가혹한 철권통치를 바로잡으려는 목적으로 이 소설 출판을 허용했다.
(3) 소련작가동맹 기관지 <노미 미르(신세계)> 편집장이었던 작가 트바르도프스키는 위대한 작가의 탄생을 확신하고 소련 공산당 지도부를 설득해 이 소설을 잡지에 실었다.
이런 정보는 소설 안에 없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을 알아야 솔제니친이 말하려고 했던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해서 제대로 발췌 요약을 할 수 있다. 여기에다 솔제니친의 문학에 영향을 준 다른 러시아 작가들의 소설까지 알면 더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다. 글쓴이는 소설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가 푸시킨과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건강하고 품격 있는 러시아인의 계보를 잇는 인물이라고 보았다. 극도로 정밀하게 묘사한 슈호프의 하루는 소련 인민의 고통스러운 삶을 대표한다고 해석했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작가의 생애, 당시 소련의 정치 상황, 러시아문학의 전통, <암병동>이나 <수용소군도> 같은 후속 작품에서 솔제니친이 보여 준 철학적 문학적 성향까지 소설의 콘텍스트를 종합적으로 살펴서 해석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해석이 달라지면 발췌 요약도 달라지기 때문에, 텍스트 발췌 요약은 콘텍스트를 얼마나 깊고 정확하고 풍부하게 파악하느냐에 달려 있다.
<표현의 기술> 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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