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글쓰기/토지 속 인생이야기

9 두만아비의 아들 부탁

밭알이 2022. 5. 9. 20:21

  저녁이 끝나고 두만네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데 모깃불을 피워놓고 곰방대를 물고 있던 두만아비는 슬그머니 일어섰다. 삽짝을 나서려 하자 부엌에서 두만네가,
  "어디 가요?"
하고 물었다.
  "음."
  "밤이 저물어도 사돈이 오시믄 우짤 기요?"
  그러나 두만아비는 아무 말 없이 나간다. 마을 정자나무 옆을 지나서 언덕을 올라간다. 외딴 언덕 위에, 윤보가 사는 초가의 모깃불이 보였다.


  "거기 오는 기이 누고."
  윤보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나다."
  "나라니?"
  "이평이다."
  "짚세기나 삼을 일이지 머하러 왔노."
  거적을 깔아놓고 마당에 누워 있던 윤보는 부시시 일어나 앉는다.
  "와 오믄 안 되나?"
  "우리 집이사 사통팔방이니께, 금줄을 칠라 캐도 삽짝이 있이야제. 산짐승도 오는데 사람 못 올 기이 머 있노."
  "우찌 그리 밤낮 삐두룸한 말만 하노."
  "그 재미로 안 사나."
  "실없는 소리 고만하고. 니 서울 간다믄서?"
  "음."
  "그래서 내 저러...... 부택이 하나 있어서 왔는데."
  "그러믄 그렇지. 니가 공걸음할 것가."
  "다름 아니고...... 내, 생각 끝에 하는 말이니 들어주어야겄다. 우리 두만이 놈 서울 데리고 안 갈라나?"
  "머라꼬?"
    "농사꾼 팔자, 이놈의 팔자 평생 가봐야 펼 날이 없고 대목일이나 배워서 제 자작으로 살아보는 기이 아무래도,"
  "목수 팔잔 별수 있건데? 밤낮 짜르고 깎고, 허 참, 바느질쟁이 목수 잘 사는 것 못 봤다더라."
  "그놈의 땅뙈기 부치묵으믄서 땅임자 눈치 살피믄서 사는 것보다는."
  어슴푸레한 밝음 속의 두만아비 두 눈은 슬프게 보였다. 윤보는 그 눈을 지그시 바라본다.
  '오냐. 그래도 네놈이 마음속으로는 괴롭아했구나.'
  두만아비는 조그마한 윤보의 두 눈이 부시기라도 한 듯 목을 긁적긁적 긁는다. 핏줄이 풀쑥풀쑥 솟아오른 손등, 깡마른 모습에 비하여 손은 무척 크게 보였다.
  "그러다가 잘될라 카믄 잘될 기고 못 돼도 재주 하나 있이믄 밥이사 굶겄나. 서울 바닥에서 한분 굴러보는 것도."
  "아 이 사람아, 내가 서울로 아주 가나?"
  "좀 부리묵다가 내비리고 오라모. 그놈이 그래 봬도 단단하니께 잘못되지는 않을 기구마."
  "장개는 우짤 기고."
  "장개는 머 그리 바쁘나, 없는 놈이."
  "아따 되게 울어쌓는다 정 그렇다믄."
  "데리고 갈라나?"
  "아이사 괜찮지."
  "고맙네."

  두만아비는 짚세기 두 켤레를 묶고 있었는데 검버섯이 핀 얼굴은 딱딱해 보였다. 윤보가 연장망태를 짊어지고 왔다. 
  "오나."
  "오기는 온다마는 또 가야제. 우째 떠날 차비는 다 됐나?"
  "야."
  두만네가 대답한다.
  "그라믄 선걸음에 가는 기이 좋겄구마."
  "그렇지마는 술 한 잔이라도 들고 가시야제요."
  "그럴 것 없소. 두만아, 가자."
  "그렇게 가시믄 서분해서 우짭니까."
  윤보 뒤를 따르는 두만이 등을 쓸어주며 두만네가 말했다.
  삽짝까지 나왔을 때 두만아비는 묶은 짚세기 두 켤레를 마누라에게 주면서,
  "윤보."
하고 불렀다.
  "와."
  "니만 믿는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단다."
  두만아비는 잠자코 돌아섰다.
  "주우주, 주주주주우......."
  병아리를 몰면서 집 안으로 들어간다.
 

                                                                                                                    토지 4권 84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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