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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자리

사장님과 식사시간이 잡혔다. 최근 '주니어보드'가 회사마다 인기다. 회사에서는 사장님과 5년 차 미만의 직원들이 새롭게 떠오르는 장소나 회사의 사업과 관련 있는 장소를 방문하는 행사를 자주 한다. 이런 행사를 통해 서로 얘기하며 통찰력을 키우고 젊은 직원들과 의견을 나누어 세대 간의 간격을 줄이고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다. '역멘토링'과 겸하여 진행하는 행사다. 팀장들과도 비슷한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었는지 '시니어보드'란 이름으로 사장님과의 행사를 갖게 됐다. 자리를 준비하는 팀장은 바쁘다. 비서나 경영지원팀장과 통화하고 문자하고 정신없다. 대기장소와 출발시간을 정하고, 이동경로와 수단을 상의하고, 팀장들에게 공유하고, 식사장소와 메뉴를 추천받고, 적당한지 자문을 구하고, 결정사항을 다시 알려주고, 후식..

조각글쓰기 2022.03.01

발췌요약

글쓰기를 하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텍스트 발췌요약부터 시작하는게 좋다. 글쓰기에는 비법이나 왕도가 없다. 글쓰기를 할 때는 만인이 평등하다. 잘 쓰고 싶다면 누구나, 해야 할 만큼의 수고를 해야 하고 써야 할 만큼의 시간을 써야 한다. '발췌'는 텍스트에서 중요한 부분을 가려 뽑아내는 것이고, '요약'은 텍스트의 핵심을 추리는 작업이다. 발췌는 선택이고 요약은 압축이라고 할 수 있다. 발췌가 물리적 작업이라면 요약은 화학적 작업이다. 그런데 어떤 텍스트를 요약하려면 가장 중요한 정보를 담은 부분을 먼저 가려내야 한다. 효과적으로 요약하려면 정확하게 발췌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보면 발췌요약이라는 말은 요약이라고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텍스트 요약은 귀 기울여 남의 말을 듣는 것과 비슷하다. ..

'단문쓰기'의 예

같은 뜻을 담아도 단문으로 쓴 글과 복문으로 쓴 글은 느낌이 다르다. 다음은 초판(1988)에서 가져온 글이다. 드레퓌스 사건을 다룬 그 책의 첫 꼭지 첫 단락이다. 복문을 어떻게 단문으로 바꾸는지, 그리고 문장구조와 문체의 변화가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살펴보자. O 초판 글 1894년9월 어느 날, 프랑스의 참모본부 정보국은 프랑스 주재 독일대사관의 우편함에서 훔쳐낸 한 장의 편지를 입수했다. 그 편지의 수취인은 독일대사관 무관인 슈바르츠코펜이었고 발신인은 익명이었으며, 내용물은 프랑스 육군 기밀문서의 '명세서'였다. 스파이 활동의 거점인 독일대사관을 감시하고 배반자를 색출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던 참모본부는 '명세서'를 작성한 사람이 참모본부 내에 있는 자이거나, 최소한 그런 자와 가까운 연관을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요약

자기를 표현하는 행위는 인간의 본능이다. '글쓰기'는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감정이나 생각을, 욕망과 충동을, 기대와 소망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표현해서 타인과 교감하고 그를 통해 기쁨과 성취감을 느낀다. 우리는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로 인생을 채운다. 은 논리적 글쓰기 일반론에 대한 글이다. 어떻게 해야 논리적인 글을 쓰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작가는 먼저 논증의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한 세 가지 규칙을 소개한다. '취향고백과 주장을 구별한다', '주장은 반드시 논증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에 집중한다'. 이 세 가지 규칙을 잘 따르기만 해도 어느 정도 수준 높은 글을 쓸 수 있다. 재능의 영향을 많이 받는 문학글쓰기는 아무나 할 수 없다. 하지만, 논리글쓰기는..

'일본말, 서양말 오남용'의 예

잘못 가져다 쓴 중국 글자말과 일본말, 서양말은 글을 어렵게 만들고 뜻을 흐리게 한다. 읽기가 힘들고 듣기도 흉하다. 이런 것이 들어와 있으면 문장이 쓸데없이 길어지고 운율이 무너진다. 잘 쓴 글은 말하듯 자연스러운 글이다. 다음은 내(유시민 작가)가 글쟁이가 되는 계기를 만들어준 에서 가져왔다. 가 못난 글인지 쓸 때는 몰랐다. 명문이라고 칭찬한 사람이 많아서 한동안은 우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뜻을 표현하는 데에는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문장을 제대로 쓴 글은 아니었다. 못난 곳에 밑줄을 긋고 바르게 고쳤다. 원래 글에서는 한자말과 격조사를 지나치게 자주 그리고 함부로 썼고, 일본말과 서양말 문법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고친 글이 어딘가 밋밋하고 심심해진 것 같지만 훨씬 자..

'못난 글의 수정' 예

다음은 2014년 7월 8일 국무총리가 발표한 담화문의 한 단락이다. 이것이 못난 글인지 아닌지 알아보자. 밑줄 그은 곳을 특별히 의식하지 말고 우선 눈으로 읽어보라. 그다음에는 입으로 소리 내어 다시 읽어보라. 그동안 육상에서의 사회 재난과 자연 재난을 관장하는 부서가 각각 본부조직과 외청으로 이원화되어 있고, 해상에서의 재난은 해수부와 해경으로 분산되어 있어 재난 안전을 통합적으로 기획하고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육상과 해상의 재난, 사회 재난과 자연 재난을 모두 통합하여 국가안전처로 일원화하여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철저히 책임 행정으로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안전처가 하루라도 빨리 출범해야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위한 획기적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눈으로 읽어서 무슨 뜻..

'논점 일탈의 오류'의 예

'아메리카노커피를 먹어야 회의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노동자 민중과 무슨 인연이 있는지 의아하다'는 주장은 거센 풍파를 일으켰다. 온갖 이야기가 다 나왔지만 정리하면 대충 이런 것이었다. 노동자 민중과 인연이 있는 사람은 아메리카노커피를 마시지 말아야 하느냐, 믹스커피는 민중적이고 아메리카노커피는 반민중적이냐, 아메리카노커피가 미국 커피 맞냐, 시골 할아버지들도 모내기하다가 새참으로 커피 마시는데 무슨 헛소리냐, 비판의 초점은 '아메리카노커피'와 '노동자 농민'을 연결한 것이었다. 글쓴이는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끌어들이는 '논점 일탈의 오류'를 저질렀다. 당 홈페이지에 올린 글의 주제는 '유시민 공동대표의 권위주의적 생활 태도'였다. 그런데 그 문장 하나로 인해 모든 게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가 마..

'논증'의 예

유시민 작가의 독일 유학생시절 이야기다. 작가는 독일을 포함해 세계 각지에서 온 청년들과 어울려 공부도 하고 놀기도 했다. 국제금융기구 관련 세미나 주간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에 휴게실에서 뉴스를 보는데 독일 학생 둘이 논쟁을 시작했다. 한 학생은 보수적인 남부 바이에른의 뮌헨에서 왔다. 이 학생을 '뮌헨'이라고 하자. 다른 학생은 북부 항구도시 함부르크에서 왔다. '함부르크'라고 하자. 논쟁의 발단은 독일 사회민주당 전당대회 전야제 행사였다. 50대 당지도부 인사들이 20대 청년당원들과 테크노댄스를 추는 장면이 텔레비젼 뉴스에 나왔다. 귓바퀴에 피어싱을 여러 개 한 여성당원이 보였다. "미친 것!" '뮌헨'이 혼잣말로 욕을 했다. 그러자 '함부르크'가 물었다. "뭐가?" "저 피어싱 말이야." "저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