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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문쓰기'의 예

밭알이 2022. 2. 22. 20:56

  같은 뜻을 담아도 단문으로 쓴 글과 복문으로 쓴 글은 느낌이 다르다. 다음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 초판(1988)에서 가져온 글이다. 드레퓌스 사건을 다룬 그 책의 첫 꼭지 첫 단락이다. 복문을 어떻게 단문으로 바꾸는지, 그리고 문장구조와 문체의 변화가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살펴보자.

O 초판 글                               1894년9월 어느 날, 프랑스 참모본부 정보국은 프랑스 주재 독일대사관 우편함에서 훔쳐낸 한 장 편지를 입수했다. 그 편지 수취인은 독일대사관 무관인 슈바르츠코펜이었고 발신인익명이었으며, 내용물은 프랑스 육군 기밀문서 '명세서'였다. 스파이 활동 거점인 독일대사관을 감시하고 배반자를 색출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던 참모본부는 '명세서'를 작성한 사람이 참모본부 내에 있는 자이거나, 최소한 그런 자와 가까운 연관을 가진 인물이라는 심증을 굳히고 수사를 시작했다.

  이 단락은 세 문장인데 모두 복문이다. 공연히 어려운 중국 글자말을 많이 썼다. 마치 일본말처럼 조사 '의'를 남발했다. 문장 운율이 맞지 않는다. 결코 잘 쓴 글이 아니다. 다음은 개정판(1994)에서 가져온 같은 단락이다.

O 개정판 글                            1894년9월 어느 날, 프랑스 육군 참모본부 정보국 요원이 프랑스 주재 독일대사관 우편함에서 편지 한 장을 훔쳐냈다. 독일대사관 무관 슈바르츠코펜 앞으로 가는 봉투 안에는 프랑스 육군 기밀문서의 내용을 자세히 적은 '명세서'가 들어 있었고, 보낸 사람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러잖아도 프랑스 군사정보를 독일에 팔아먹는 스파이를 찾아내느라 골머리를 썩이고 있던 참모본부는 이 '명세서'를 작성한 사람이 참모본부 안에서 일하고 있거나 적어도 그 가까이 있는 인물이라고 단정하고 조사를 벌였다.
  
  한 차례 손을 보았는데도 여전히 부적절한 표현과 군더더기가 남아 있다. 밑줄 그은 곳이다. 지금 다시 문장을 손본다면 아래와 같이 고칠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뜻은 셋 모두 같다. 그러나 문장의 형태와 구조와 운율은 다르다. 어느 것이 나은가? 아래 '다시 고친 글'이 제일 깔끔하고 명확해서 읽기에 좋다.

O 다시 고친 글                        사건은 1894년9월에 일어났다. 프랑스 육군 참모본부 정보국 요원이 프랑스 주재 독일대사관 우편함에서 편지 봉투를 하나 훔쳤다. 독일대사관 무관 슈바르츠코펜에게 보낸 것이었고 발신인은 알 수 없었다. 거기에는 프랑스 육군 기밀문서의 내용을 적은 '명세서'가 들어 있었다. 군사정보를 적국에 팔아먹는 스파이를 찾아내느라 골머리를 썩이던 참모본부는, 이 '명세서'를 작성한 사람이 참모본부 요원이거나 요원과 가까운 인물일 것이라 추정하고 조사를 벌였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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