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80

습관 유감

오늘도 손가락이 끌려갔다. 욕실 앞 콘센트에. 콘센트의 스위치가 고장 났다. 헤어드라이기 전원선 플러그가 늘 꽂혀 있는 콘센트다. 평상시에는 대기전력을 줄여 보려고 전기를 끊어 놓는다. 스위치는 몽땅 연필심만 한 두께로 콘센트 아랫부분에 돌기처럼 달려있다. 스위치는 두 개가 있는데 전원 스위치를 한 번 눌러 녹색이 되면 전기가 연결된다. 그 전원스위치가 삐뚜름하게 자리에서 벗어나 버린 것이다. 이곳에 온 지 3년 하고 8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아침저녁으로 허구한 날 눌러대니 못 버틴 모양이다. 고장이 더 생기면 곤란해진다. 조심스레 전원스위치와 자동스위치를 번갈아 눌러 빨간불이 나오게 했다. 그렇게 하면 전기는 계속 공급된다. 더 이상 스위치를 눌러댈 필요가 없어진다. 이렇게 설정한 지 한 달이 넘었..

조각글쓰기 2023.05.16

<계속 가보겠습니다> 요약

법무부 공고 제2013-34호 검사징계법에 의거, 다음과 같이 공고합니다. 법무부 장관 1. 징계 대상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 임은정 2. 처분 일자: 2013년 2월 15일 3. 징계 종류: 정직 4개월 4. 징계 사유: 2012년 12월 28일 다른 검사에게 재배당된 공판 사건에 무단으로 관여하여 지시 위반 등 시작은 2012년 9월 6일이었다. 1974년 유신헌법 반대 투쟁을 주도하다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던 박형규 목사의 과거사 재심 사건 재판이 있던 날이었다. 피고인이 위반한 대통령긴급조치는 헌법에 위반되어 무효이므로 무죄인 것이 당연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인 배역에 며칠 동안 많이 떨리고 설레었다. 논고문을 읽는 내내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과 역할에 대한 벅찬 희열에 몸을 ..

쇼윈도+고객, 유혹, 기다림

쇼윈도를 통한 매장 내 모습이 따뜻하고 정감 있다. 한 차례 손님을 치른 후일까. 손님이 없다. 채워지지 않은 매장. 갖가지 물건들은 유혹하는 몸짓으로 기다리고 있다. 이 순간 들어가는 고객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프로슈머(prosumer)가 된다. 쇼윈도 넘어 보석이 다채롭다. 반조명의 진열대 위 보석들은 본모습을 숨기고. 쇼윈도 유리창은 가로막는다. 더 다가갈 수 없음 만질 수 없음. 이 순간 유혹은 생명을 갖는다. 고객을 다시 오게 만든다. 인간이 만든 피조물 중에 의자만큼 기다림을 표현하는 것이 있을까. 다리 위 'ㄴ'자가 만드는 텅 빈 공간은 기다림으로 가득하다. 그 무게감은 다리를 통해 바닥 아래로 내려가고 조명을 위로 멀리 보낸다. 쇼윈도 유리창은 그 모습을 보여준다. 기다림을 의자 자신에게..

조각글쓰기 2023.05.07

인권경영 - 기업의 인권 존중 책임

2005년 UN은 존 제라드 러기(John Gerard Ruggie) 하버드 교수를 '인권과 다국적 기업과 기타 기업체의 문제'에 관한 UN 사무총장 특별대표로 임명했다. 존 러기 교수는 이 숙제를 3단계에 걸쳐 진행했다. '1단계(2005~2007) 기초 연구 단계, 2단계(2007~2008) 권고안 작성 단계 : 인권이사회에서 승인(Framework), 3단계(2008~2010) 이행원칙의 작성단계 : 인권이사회에서 승인(이행원칙)'으로 진행되었다. 'UN인권이행원칙'의 내용은 이렇다. 국가의 인권 보호 의무(State duty to protect human rights), 기업의 인권 존중 책임(Corporate responsibility to respect human rights), 구제책에 대한..

<노르웨이의 숲> 요약

주인공 와타나베는 스스로도 혼자서 책을 읽거나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 굳이 말하자면 눈에 띄지 않는 인간으로 생각한다. 그는 즐겨 책을 읽지만 많이 읽는 타입은 아니다. 마음에 드는 책을 잡으면 몇 번씩 반복해서 읽는다. 좋아하는 작가는 트루먼 커포티, 존 업다이크, 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챈들러 등인데 주변 애들과는 좀 다르다. 당연히 이야기가 서로 통하지 않았다. '위대한 개츠비'는 그에게 최고의 소설이다. 와타나베는 1968년에 대학생이 되었다. 그의 전공은 연극이다. 연기는 아니고 희곡을 읽고 연구하는 쪽이다. 그렇다고 좋아하지는 않는다. '뭐든 좋았던 거야, 내 경우는.' 어쩌다 보니 연극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예쁘고 우아한 여자는 자기에게 과분한 여자라고 생각한다. 좀 덜렁대고 거칠더라도..

'인권의 확장' 맛 보기

사회언어학에 따르면 아이들에게는 여러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이 있지만, 읽고 쓰는 능력을 제대로 습득하는 데에는 모어-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배운 말-가 제일 낫다고 한다. 그런데 모어는 모국어와 다를 수 있으며, 어떤 경우엔 양자가 충돌하기도 한다. 모어가 아닌 모국어를 높은 수준으로 구사하게 된다 하더라도 모어의 근본적 친숙함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모어 사용은 인권의 토대인 생명권, 자유권, 행복추구권과 동일한 차원의 기본권이라 할 수 있다. 집단의 권리인 3세대 인권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언어 인권'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세계적 차원에서 이주와 다문화적 상황이 빚어지면서 모어를 사용하는 문제가 권력, 억압, 정체성과 긴밀하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별로 문제 되지 않..

'권리 간 충돌'에 대해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권리 간 충돌 문제에 관해선 확실한 정답이 없다'가 정답이다. 사례별로 따져봐야 한다. 우선 권리의 충돌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 첫째, 종류가 다른 권리들이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대중의 알 권리와 공인의 사생활 권리를 생각하면 된다. 둘째, 동일한 권리의 행사 방식과 한계 설정을 놓고 갈등하는 경우도 있다. 표현의 자유가 소중하지만 '일베'의 행태에 어떤 제한을 가해야 할지 고심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셋째, 한 사람의 내면에서 서로 다른 권리들이 충돌하기도 한다. 내가 믿는 종교의 가르침과 시민 의식이 갈등하는 게 좋은 예다. 넷째, 법적 권리와 사람들의 가치가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권리'라는 말에는 여러 차원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인권의 관점에서 보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