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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묘미'의 예, 바다의 일출 - 이외수 편

밭알이 2022. 10. 8. 23:32


  도시를 벗어나니 곧 차창 밖으로 바다가 내다보였다.
  "아!"
  하고 감탄하면서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것은 일찍이 눈으로 직접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거대하고 충격적인 괴물이었다. 시커먼 등 비늘을 번들거리며 새벽 미명 속에 가로누워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도대체 어디가 머리이고 어디가 꼬리인지 분간할 수 조차 없을 정도였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면서 그 괴물은 차츰 형태를 자세히 드러내기 시작했고 나는 그야말로 광대무변이라는 것을 피부로 직접 실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일출이고 뭐고 우선 생전 처음 보는 바다의 모습에 매료되어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었다. 이게 바다로구나, 이게 바다로구나, 마음 속으로 자꾸 그렇게만 되뇌고 있었다.

  하늘이 서서히 붉어지고 있었다.
  하늘의 빛깔에 따라 바다의 빛깔도 서서히 살아나고 있었다. 갑자기 천지가 새로 시작되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찬란한 주황의 광채가 차츰 절정을 이루더니 바다가 끓는 듯 붉게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용광로의 바다였다. 무엇이든지 집어넣기만 하면 대번에 녹아 없어져버릴 것 같았다. 삽시간에 천지는 눈부신 광채로 번뜩거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수없는 현기증이 짜릿짜릿한 전류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수천만 개의 칼날들이 새빨갛게 달구어져 바다 가득히 널려 있는 것 같았다. 그 칼날들은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하여 백사장 쪽으로 한꺼번에 붉게 번뜩거리며 밀려들고 있는 것 같았다. 때로는 붉고 거대한 뱀이 되어 허리를 뒤채이며 잠겨들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윽고 그러한 바다의 끝부분에서 약간 흐늘거리는 듯한 느낌이 아지랭이처럼 번지는가 싶더니 붉게 이글거리는 해가 비쭉이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온 천지가 주홍 물감에 흥건하게 젖어들면서 자지러질 듯한 황홀감이 충만하게 내 몸속에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죽이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는 약간 일그러지는 듯한 느낌으로 너울거리면서 조금씩 조금씩 바다 밖으로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아주 느린 동작 같았으나 의외로 그것은 빠르게 진행되어서 어느새 거의 둥근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생명력이 온 바다에 경건한 합창처럼 내리쌓이고 있었다. 일체의 주검이 다시 부활하고 일체의 더러움이 파묻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완전히 넋을 잃은 상태로 오래도록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뼈들이 혼곤하게 녹아 없어져버리는 것 같았다. 영혼조차도 붉게 물들어져 그 바다 위에 한 개 비늘로 떨어져 내리고 그래서 함께 출렁거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들개>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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