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감상하듯 한 번 더 읽었다. 아니, '시를 감상'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그냥 한 번 더 읽었다. '내 소설 또한 감상되기를 바라며 결코 설명되기를 바라지는 않는' 지은이의 말 때문이었다. 이야기로 읽다가 여러 묘사를 되짚어 읽다가 장면을 그려보며 읽다가 다시 이야기로 읽기가 반복되었다. 오랜 기간 건조한 문장의 독해에 집중하며 읽던 시각과 머릿속 구조가 거북해한다. '문학'과 동떨어진 내 모습을 보게 된다.
한 여자가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일들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금후 살아갈 일들에 대해서도 나는 아무 의미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24쪽)' 그 여자는 '밤이면 잠이 오지 않았다. 그것은 정말 가혹한 형벌이었다. 내의식은 언제나 질식한 채 어둠 속에 허옇게 떠 있었다(25쪽)' 그녀는 쓰러져가는 폐허의 건물에서 홀로 배고프게 지내고 있다. 배가 고프면 자존심이 상해서 견딜 수 없지만, 그녀는 끝까지 참아 보기로 마음먹었다.
'불빛들이 비에 젖은 아스팔트 위에 흥건하게 녹아서 번들거리고 있었다(56쪽)' 되짚어 읽어 본다.
한 남자가 있다. 건물에 몰래 들어와 숨어 지내고 있었다. '빌어먹을 놈의 사회가 내게서 빼앗아 가버린 나의 실체를 찾겠다는 겁니다(75쪽)' 그는 화가인데, '직장을 가진 다음부터 내 그림은 시름시름 병을 앓기 시작했어요(79쪽)' 직장을 그만두고 이혼을 하고 자기와 흡사한 들개를 그리고 있다.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을 그 내부까지 묘사해 보려고 할 때 비로소 떠도는 자기의 영혼이 자기 육체 속으로 불러들여지게 되는 것이죠(85쪽)'
여자의 배고픔은 심해지고 초라해진 자기 자신에 죽고 싶은 심정이다. 남자는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되찾기를 힘들어한다. 세상이 달라 보이는 눈이 내리는 날, 남자는 자기와의 일체감이 있는 작품 하나를 그리기 시작한다. 여자는 그 그림에 마음을 사로잡히고 그림은 그녀의 정신적 지주가 된다. 남자는 '어딘지 틀려있다, 지우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갈등 속에서 그림을 그려나가고 여자는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해 개까지 사 온다. 개는 점점 들개가 되어간다. 남자는 닫힌 공간에서 그림을 그려나간다.
'그것은 일찍이 눈으로 직접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거대하고 충격적인 괴물이었다. 시커먼 등 비늘을 번들거리며 새벽 미명 속에 가로누워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도대체 어디가 머리이고 어디가 꼬리인지 분간할 수 조차 없을 정도였다(212쪽)' 이런 문장은 장면을 그리며 감상할 수 있을 듯하다.
메마른 여름이다. 들개는 병들고 남자도 병이 든다. 여자는 돌보고. 돌보다가. 여자는 바다처럼 미친 듯이, 출렁거리면서 일출 속에 불타듯이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폐허의 건물 속, 꿈만 같던 시간을 이제 그만두고 싶어 한다. 바다를 생각한다. 가뭄을 끝내는 비가 오는 날, 여자는 돌아온다. 닫힌 공간이 열려있다. 작품은 완성되었다. 남자와 들개는. 죽어 있다.
* <들개>는 도서출판 동문선에서 1989년 초판, 1991년에 2판을 발행했는데, 이 책은 2판이다. 최초 발표는 1981년이다. 이 책의 저자 약력 마지막 줄은 이렇다. '1975년 중편소설 <훈장>으로 '세대' 신인문학상 당선. 데뷔. 현재 강원도 춘천에서 집필에만 몰두.' 40년 전, 35세 이외수는 집필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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