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글쓰기/토지 속 인생이야기

21 죽어가는 월선과 용이의 만남

밭알이 2022. 7. 24. 22:00

  섣달그믐 날 해거름이었다. 망태 하나를 어깨에 걸머지고 초췌해진 사내가 집안으로 들어섰다. 솜을 두어 누덕누덕 기운 반두루마기도 벗어던진다.
  "홍아!"
  "홍아! 아버지 왔다!"
  홍이 안방 문을 박차듯 뛰어나온다. 동시에 작은방의 문이 떠나갈 듯 열렸고 영팔이와 두매가 나왔다. 홍이의 얼굴은 홍당무였다. 모두 벙어리가 되어버렸는지 용이 뒷모습을 쳐다본다. 누구 한 사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몸 전체에서 뿜어내는 준엄한 기운에 세 사람은 압도되어 선 자리에 굳어버린 채다. 방문은 열렸고 그리고 닫혀졌다. 

  방으로 들어간 용이는 월선을 내려다본다. 그 모습을 월선은 눈이 부신 듯 올려다본다.
  "오실 줄 알았십니다."
  월선이 옆으로 다가가 앉는다.
  "산판 일 끝내고 왔다."
  용이는 가만히 속삭이듯 말했다.
  "야. 그럴 줄 알았십니다."
  "임자."
  얼굴 가까이 얼굴을 묻는다. 그러고 떤다. 머리칼에서부터 발끝까지 사시나무 떨듯 떨어댄다. 얼마 후 그 경련은 멎었다.
  "임자."
  "야."
  "가만히."
  이불자락을 걷고 여자를 안아 무릎 위에 올린다. 쪽에서 가느다란 은비녀가 방바닥에 떨어진다.
  "내 몸이 찹제?"
  "아니요."
  "우리 많이 살았다."
  "야."
  내려다보고 올려다본다. 눈만 살아 있다. 월선의 사지는 마치 새털같이 가볍게, 용이의 옷깃조차 잡을 힘이 없다.
  "니 여한이 없제?"
  "야, 없십니다."
  "그라믄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머리를 쓸어주고 주먹만큼 작아진 얼굴에서 턱을 쓸어주고 그리고 조용히 자리에 눕힌다.
  용이 돌아와서 이틀 밤을 지탱한 월선은 정월 초이튿날 새벽에 숨을 거두었다.


                                                                                          토지 8권 243쪽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