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는 방문을 닫아주고 마루에 걸터앉은 월선의 뒷모습을, 그의 주변을 유심히 쳐다본다. 뭐 가져온 거나 없는지 살피는 눈초리다.
"아이구 내사 마, 머가 먼지 모리겄네. 간도댁 엄마요."
"와."
"봉순이는 부자한테 시집갔는가 배요? 주산이(비단)를 감고 찬물에는 손도 안 넣는 팔자 겉이 뵈니께."
"......."
"사램이 심사가 따로 있소? 내 팔자 생각한께 천양지간이고, 부모 없는 봉순이도 팔자가 저리 쭉 늘어졌는데 나는 와 이렇겄소? 세상에 촌놈도 그런 촌놈은 없일 기고 살림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군식구라고 아무 데나 치았인께. 야속하요."
"씰데없는 소리."
부엌에서 달가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임이는 사냥개처럼 그 소리에 민감하다. 신발을 끌고 부엌으로 급히 간다.
"어매 멉니까?"
"머기는 머라?"
임이네는 부엌 바닥에 보따리를 펼쳐놨다가 얼른 덮어버리려 한다.
"모녀간에 인심도, 누가 뺏아갈라 카요?"
하면서도 임이는 보따리 한 곁을 재빨리 걷어 젖힌다. 쇠고기 꾸러미, 간청어가 한 뭇, 과일에서 나물거리, 푸짐하다. 마치 제사장을 봐온 것 같다. 임이의 입이 헤벌어진다.
"오래간만에 솟정 풀겄소."
"너거 집에 갈 기이 어디 있노? 국이나 끓이거든 한 사발 얻어 묵고 가거라."
"어매도 참 너무하요. 사위 생각도 좀 안 하고요?"
"가지가믄 니 서방 입에 들어가겄나? 니 아가리 들어가기도 모자랄 긴데."
"그러지 말고 좀 주소."
"돈 많은데 사묵으라모?"
"누구 말을 하는지 모르겄네."
임이는 쇠고기 꾸러미를 풀어헤치려 한다.
"야가 와 이라노?"
딸의 손을 밀어내며 임이네는 마지못해 소고기를 조금 썰어서 내밀고 짚으로 엮은 간청어 한 마리를 빼내 준다.
"어매도 손이 작아서 부자 살기는 글렀다."
"제발 니나 손이 커서 부자 살아라. 나 너거 집에 몇 달 있었다마는 내 묵는 양식은 내놨으니께."
"또 그 소리, 귀에 못 박히겄소. 어매는 내 시집갈 때 해준 기이 머 있어서 그러요."
"키운 공만도 태산이다. 양식 짊어지고 니가 세상에 나왔더나?"
"자식 안 키우는 부모도 있소?"
"안 키우는 부모도 있지."
그 어미에 그 딸이다. 먹을 것을 놓고 으르렁거리는 꼴이란 짐승만도 못하다.
토지 7권 243쪽 발췌
'요약글쓰기 > 토지 속 인생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 서희와 조준구의 최종거래 (0) | 2022.09.14 |
---|---|
21 죽어가는 월선과 용이의 만남 (0) | 2022.07.24 |
19 길상, 서희와 봉순이의 만남 (0) | 2022.07.10 |
18 서희와 봉순이의 해후 (0) | 2022.07.10 |
17 관수의 불손함과 꾸짖는 혜관 (0) | 2022.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