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그렇고, 길상이는 지금 이곳에 있지 않소이까?"
혜관은 비로소 말을 중단하고 기화에게 재빠른 시선을 던진다.
"서방님께서는 회령 나가셔서 안 계시오. 내일께나 오실는지요."
기화의 머리가 앞으로 확 수그러지고 혜관은 파리 잡아먹은 두꺼비처럼. 혜관이나 기화가 다 같이 예상했던 대로다. 그러면서도 충격이었다. 능글맞은 혜관도 숨이 막히는 듯 짓눌린 한숨이 가느다랗게 새어 나왔다.
"그러면은 스님께선 별채에 가셔서 쉬시겠소?"
서희가 침묵을 잡아젖혔다.
"쉬기보담 허기부터 달래야겠소."
혜관은 얼버무린다.
"네. 저녁을 곧 올리도록 하겠소. 봉순인 나랑 함께......."
"네."
기화 얼굴은 온통 눈물에 젖어 있었다. 혜관이 부산스럽게 나간 뒤,
"애기씨!"
"응."
서희 눈에 처음으로 눈물이 핑 돈다.
"애기씨! 전 기생이 되었답니다."
"짐작은 했다."
"저도 짐작은 했어요."
"......."
"서울서 이 부사 댁 서방님께 이곳 소식은 들었구요."
"내가 혼인한다는 얘기도 하시더냐?"
"그 말씀은 아니하셨소. 하지만."
"그분은 왜 서울에 계시는고?"
"일본으로 공부 가실려구 준빌 하시는가 보지요."
"그래?"
서희는 웃었다.
"저도 서울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이 부사 댁 서방님께서 여기저기 줄을 놔주셔서 지내기가 편안합니다."
"편안하기만 해서 쓰겠니? 기왕 그 길로 나갔으면 명기가 돼야지. 국창도 되구. 그래 그곳엔 못 가보았느냐?"
"이부사댁 서방님이 간도에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었지요. 하동까지만. 서울 오기 전엔 진주에 있었고요."
"조준가가 여지껏 살아 있다더냐?"
"죽진 않았소."
서희와 기화의 눈이 강하게 부딪친다.
"하지만 망할 날이 머지않았을 게요. 소문에 의할 것 같으면 광산을 해서 땅이 절반은 남의 손에 넘어갔다 하더이다."
"절반."
"그자는 거처를 서울로 옮겼고 꼽추 그 병신만, 그 보담 평사리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됐지요? 월선아지매는 어디 계시어요?"
"밤이 길어. 차차 얘기하자꾸나."
드디어 말아놓았던 지나간 세월은 풀어지고 연못가로 돌아온 서희와 봉순이는 한 사내를 의식 밖으로 몰아내 버린다.
토지 7권 123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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