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얼마에 내놓으셨지요?"
서희의 침묵이 깨어졌다.
"집을 내어놓다니?"
"......."
"집문서는 언제든지 내줄 수 있고 명의변경도."
"안 파시겠다, 그 말이구먼."
"그, 그렇지."
"그러면 만날 필요가 없지요."
"굳이 그렇다면야,"
"굳이가 아니에요!"
서희 눈에서 불덩이가 떨어지는 것만 같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필요한 돈은 오, 오천 원인데,"
"오천 원에 내놓으셨군요."
"......."
"서류는 가져오셨나요?"
"가, 가지고 있지."
"유모."
"예, 마님."
"안방에 가서 머릿장 속에 있는 푸른 보자기를 가지고 오시오."
"네."
유모가 나간 뒤,
"고맙네, 고마워."
서희는 남쪽으로 트인 창문에 눈을 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윽고 유모가 나타났다. 서희는 지폐 다발을 내민다. 조준구의 얼굴에 변화가 인다. 과연 저 오천 원은 내게 올 것인가. 무슨 수로 그 집을 오천 원에 판단 말인가. 저 돈이 과연 내 품에 들어올까.
"여보시오."
"으, 음!"
조준구는 움찔한다.
"내 이것으로서 거기하고는 끝이 난 셈이오. 마지막으로 인간적인 동정을 베풀겠소."
조준구는 두려운 사태를 예감한다.
"본의는 아니지만 선택의 자유를 드리겠소. 일말의 양심을 가져가시든지 돈 오천 원을 가져가시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시오."
조준구는 손수건을 꺼내어 이마를 문지른다.
"내, 내 형편이 말이 아닐세. 앞서도 말을 했으나 죽어가는 사람 살리는 셈 치고."
"마음대로 하실 수 있소."
조준구는 서희를 쳐다본다.
"마, 만석꾼의 인척이 유리걸식을 하, 한다면 자네 체면이, 체면이 뭐가 되겠나."
"......."
"어, 어쩔 수 없네."
조준구는 얼굴의 땀을 또 닦는다. 눈앞에 돈을 보고 손을 뻗칠 수 없다. 조준구는 드디어 팔을 뻗어 지폐를 집어 든다. 서희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떠오른다. 미소가 크게 확대되어 갔다.
"나, 나, 그러면 가, 가야겠네."
조준구는 허둥지둥 뒤통수에 그 날카로운 톱날 같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대문을 나선다.
토지 9권 180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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