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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첫 알바

밭알이 2022. 2. 5. 20:52

  알바가 전사지 기계 앞에 앉는다. 사무실이라고 하기에는 어둡다. 비어 있는 책상 몇 개, 기다란 소파가 중앙에 있고, 한쪽 벽면에는 옷가지를 차곡차곡 쌓아 넣은 비닐봉지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고 그 앞쪽으로는 교자상 만한 종이박스가 줄지어 입을 벌리고 있다. 종이박스마다 종로 2가, 이대, 신촌, 연신내, 동대문... 배송지가 적혀 있다. 사무실이라고 하기에는 의류 공장에 가깝다.
  전사지 기계는 사무실 한쪽 구석에 작은 교자상 만한 크기로 놓여 있다. 무늬 없는 반팔티를 펼쳐 전사지 기계 위에 놓는다. 가슴 부위를 정중앙에 놓고 구김이 없도록 잘 펼친다. 전사지를 가슴 부분에 놓고 기계 윗부분 손잡이를 끌어당겨 전사지 위에 내리누른다. 시간이 조금 지나 알람이 울리면 기계 윗부분을 밀고 반팔 티를 옆으로 쌓아 놓는다. 다시 반복하여 전사지 부착작업을 한다. 전사지 기계는 열로 뜨끈 뜨근하고 알바를 달군다. 어느 정도 반팔 티가 쌓이면 전사지를 떼고 한 장 한 장 겹쳐 스무 장-스무 장이 아닐 수 있다-을 하나로 해서 팔을 뒤쪽으로 접고 반을 접어 한 단 한 단 쌓아 놓는다.
  전사지 부착작업을 한 달 동안 했다. 전사지를 붙인 반팔 티는 얼마를 더 받을까? 오백 원은 더 받지 않았을까? 한 시간에 삼십 벌은 부착했을 것 같고, 한 달 동안 삼천벌은 했을 것 같다. 알바는 아르바이트비로 이십삼만 원쯤을 받았다. 대학선배의 주선이었다. 선배는 알바에게 알바를 끝낼 때 같이 일한 회사 직원들한테 '다음에도 같이 일하자'는 말을 들어야 한다고 얘기했었다. '수고했다'는 말은 들었을 것 같다. 출근은 두 시간이 걸렸다. 당연히 퇴근도 두 시간이 걸렸다. 대학교 1학년의 한 달이 그렇게 지나갔다. 그 뜨겁던 1987년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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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의점 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출입문 옆으로 다층의 선반이 있는 듯하고 그 옆으로 광고문구나 그런 것들이 가리고 있어 캐셔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한참 겨울이라 내부가 보이는 틈새 부분도 유리에 성에가 서려 흐리게 보인다. 편의점 알바 시간은 오후 네시에서 밤 열한 시까지다. 지금은 열한 시가 다 되었다. 편의점은 큰 길가에 접하고 있다. 편의점 바깥에 탑차가 서있다. 길 건너편으로 건너가 알바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운전수는 물건을 꺼내고 들고 들어가고 나오고를 반복한다. 젊은 남자들 몇 명이 길을 건넌다. 그중 한 명이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알바는 주목하고 있다. 잠시 후 남자가 나와 무리와 움직이고 한 여자가 들어간다. 출입문을 통해 여자가 알바와 얘기하는 모습이 보인다. 한참 겨울이라 춥다. 발을 동동거리며 온기를 부추긴다. 잠시 후 알바가 여자에게 인사를 하고 나온다.
  알바가 알바에게 묻는다. '진상 손님은 없었니?' 질문이 이어 나온다. '어려운 점은 없었니?' 알바는 무난했다고 답한다. 알바는 일주일에 두 번, 일곱 시간을 일하고 오십만 원을 좀 더 받는단다. 어둑어둑한 큰길을 걷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해서 집까지 오는 데 십분 안쪽이다. 알바와 알바가 나란히 걸어간다. 2022년 스무 살의 한 달이 그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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