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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상호 존중이 어려운 이유

밭알이 2022. 4. 30. 16:16

  4월 초에 직장에서 '상호존중 문화 확립'을 위한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의 내용은 '우리 사이 상호 존중을 위한 거리는?' '직장 선후배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가장 듣기 싫은 말은?'이었다. 상호 존중 거리는 여러 사람이 1~2미터가 적당하다고 답했다.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역시나 '고생했다, 수고했다'였고, 듣기 싫은 말은 여러 가지가 많이 나왔다. 직장에서, 특히 상사에게 일상으로 듣는 말들이었다. 

  '상사'도 권력이라고 권력 관계의 틀에서만 상호 존중을 바라봐야 하나. 긍정의 말 몇 마디를 하고, 거친 말을 근절하려 한다고 상호 존중 문화가 만들어지나. 다른 부분은 없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적어본다.
  얼마 전 참조로 메일을 하나 받았다. 수신인은 출장 세차를 관리하는 직원인데, 출장 세차 일을 하는 분들이 세차하면서 벽에 먼지를 턴 듯하다. 오염시킨 것에 대해 조심해 달라는 메일이었다. 다음 문장이 내 눈길을 끌었는데, '추후 동일 사례 발견 시 CCTV 영상 확보 후 임원 보고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는 내용이었다. 메일은 동일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협조 요청한다고 완곡한 문구로 끝났다. 부드러운 문구로 끝낸다고 앞에 문장이 주는 아쉬움이 가라앉지는 않았다. 한 번 더 실수하면 임원 보고한다! 이 정도면 협박 아닌가.
  직장에서는 문서로 일을 한다. 메일은 가장 많이 쓰는 의사 소통 수단이다. 전화가 불편한 이유는 나의 사정을 봐주지 않기 때문인데, 메일도 보내는 쪽 상황에 치우친 수단이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어떤 자료를 요청할 때에는 회신 날짜가 촉박하지 않은 지가 좀 더 중요하다, 문구를 부드럽고 다정다감하게 쓰더라도 수신인에게는 회신 날짜가 적당해서 기한 내에 회신할 수 있는지가 우선되기 때문이다. 수신인에게는 완곡한 말들이 겉 다르고 속 다르게 보일 뿐이다. 어떤 일을 시작한다는 시행 문서의 경우에는 더 일방적일 수 있다. 직장 전체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식적/비공식적 의견 조사 없이 경영진의 결정이라는 밀어붙이기식 시행문은 상호 존중과 거리가 멀어도 한 참 멀다. 
  
  동료나 후배 직원이 능숙하지 않아 실수하는 경우, '일 한 번 키워볼까!(실수를 키워 한 번 혼쭐나게 해 줄게)'하는 말 같이 위협하는 말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상호 존중을 위한 호칭 파괴와 존대어 사용, 몇 가지 불편한 말들을 줄여 나가는 노력은 현실감이 부족하다. 인격 모독을 근절함에 더해 일하는 과정 자체에 대한 존중과 관용의 시각이 갖춰져야 한다. 이런 인식 없는 상황에서 상호 존중은 너무 쉽게 파괴된다. '다 같이 끌고 갈 수는 없어!' 하며 편 가르고 칼질하기에 편리한 말들이 주저함 없이 얘기되고 상대방의 사정과 형편의 고려 없이 자기 위주의 일하는 방식이 계속되는 모습 아래서 상호 존중 문화 확립은 멀기만 하다. 상호 존중을 위한 여러 활동들이 정작 상호 존중하는 모습이 있기를 바라는 대상에 대한 고민 없이 유행하고 있다. 그 점이 아쉬움을 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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