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과 식사시간이 잡혔다. 최근 '주니어보드'가 회사마다 인기다. 회사에서는 사장님과 5년 차 미만의 직원들이 새롭게 떠오르는 장소나 회사의 사업과 관련 있는 장소를 방문하는 행사를 자주 한다. 이런 행사를 통해 서로 얘기하며 통찰력을 키우고 젊은 직원들과 의견을 나누어 세대 간의 간격을 줄이고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다. '역멘토링'과 겸하여 진행하는 행사다. 팀장들과도 비슷한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었는지 '시니어보드'란 이름으로 사장님과의 행사를 갖게 됐다.
자리를 준비하는 팀장은 바쁘다. 비서나 경영지원팀장과 통화하고 문자하고 정신없다. 대기장소와 출발시간을 정하고, 이동경로와 수단을 상의하고, 팀장들에게 공유하고, 식사장소와 메뉴를 추천받고, 적당한지 자문을 구하고, 결정사항을 다시 알려주고, 후식자리를 갖게 될 수 있어 준비한다. 준비하는 것만 보아도 어려운 자리임을 실감한다.
약속시간에 맞추어 팀장들이 하나 둘 자리에 나타난다. 누구는 외투를 입고 누구는 가벼운 차림이다. 날씨가 쌀쌀하지만 식사 후 산책을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팀장은 외투를 가지러 부리나케 움직이고, 한 팀장은 직원에게 어디로 가져오라고 전화를 하고, 다시 취소를 하고 어수선하다. 사장님의 등장과 함께 일어나고 뒤따른다. 이동하는 시간은 조용하다. 오늘 엘리베이터 이동시간은 제일 길다. 점심메뉴는 전골국수다. 옆 탁자에서 조리를 해서 소분하여 담아 오는 방식이어서 격에 맞는 느낌이다. 이름과 관련한 질문과 대답, 나이와 외모에 대한 서로 간의 얘기, 그리고 사이사이의 침묵으로 점심시간을 마친다.
후식자리는 자리를 옮겨 근처 찻집으로 정했다. 무엇보다도 가까워 이동의 번거로움이 적고, 근사한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어 의견이 모아졌다. 입구에서 QR코드를 찍는다. 사장님 앞에서 전화기를 내밀었다가 들였다가 양보의 몸동작을 보여 사장님 먼저 하시라고 웃음을 띤 몸동작을 한다. 흰 탁자보가 덮인 분위기 있는 자리에 앉아 음료를 시킨다. "식사는 안 하시는 건가요?" 종업원의 말에 다들 황당한 표정이다. 식사를 하고 나서 후식으로 음료를 주문하는 레스토랑이었다. '이런 제길'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 장소를 어디로 해야 할지 곤혹스러운 얼굴로 서로 쳐다본다. 어디로 가자, 어디로 가자하며 소란스럽다. 사장님은 자리에서 서서 그냥 계신다.
아쉬운 데로 옆 찻집으로 자리를 잡는다. 창가의 유리벽 앞으로 등받이 없는 소파가 놓여 있고, 탁자를 사이에 두고 일인용 의자가 두세 개 배치되어 있다. 탁자를 가져와 붙이고 의자를 몇 개 가져왔다. 그러는 사이 사장님은 서서 그냥 계신다. 사장님께 안 쪽 소파에 앉으시라 권한다. 왠지 불편해 보이신다. 팀장들은 의자에 둘러앉는다. 푹신한 소파는 젊은이보다 큰 사장님의 앉은키가 무색하게 팀장들을 올려보시게 만들었다. 팀장들의 눈길은 정처 없이 흔들린다. 머물 곳을 찾지 못한다.
'이런 얘기를 해야겠다', '회사 발전을 위해, 아니 내 팀을 위해 후배를 위해 이 얘기를 꼭 해야겠다. 용기 내자!' 다들 다짐한 얼굴이었다. "이제 밥값을 해야지!" 하는 사장님의 말씀에 한 명 한 명 얘기한다. 오늘 얘기는 정말 용기 있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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