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출근길은 지하철 1번 출구를 올라가면서 시작된다. 백화점 정문이 나오고 그 옆으로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요즘 유행하는 명품 구매대행 알바, 줄서기알바다. 오늘은 정문 옆 루이ㅇㅇ 쇼윈도부터 에르ㅇㅇ 쇼윈도를 넘어 백 미터는 됨직하다. 오늘은 어느 매장의 오픈런일까?
새벽을 지난 모습이어서 두툼한 겨울외투를 입고 발을 동동거린다. 침낭 속에 들어가 간이의자에 앉아 있기도 하고 자리를 깔고 누워 움직임이 없는 이들도 있다. 스마트폰을 보기도 하고 여럿이 있는 가운데 휴대용 컴퓨터를 보는 이도 있다.
2021년 여름쯤인가. 이 줄 서기는 눈에 띄었다. 그 이후로 수 십 차례 보았는데, 오늘은 천천히 바라보며 생각하게 된다. '이 줄 서기는 왜 내 눈을 끌고 바라보게 만드는 거지?' 지하철에서 줄을 서고 식당에서도 줄을 서고 줄 서기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인데.
노동의 본성은 비열함인 듯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알고 있듯이 노동은 품격도 가지고 있다. 어떤 노동은 부러움과 존경을 일으킨다. 명품 줄서기알바는 '이렇게 해서 돈을 벌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생기게 한다. 명품 하나를 위한 세 시간 다섯 시간 혹은 열 시간의 기다리는 노동. 이런 노동이 있었던가? 요즘 물멍 불멍이 유행하는데 기다림은 멍한 노동이다. 멍한 상태로 장시간을 보내는 노동. 자본에 묶여있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노동은 인간을 도구로 만드는데, 명품 줄서기알바는 대표할 만한 경우란 생각이 든다.
줄서기는 언제부터 시작했을까? 드라마를 보면 과거를 보기 위해서나 구휼미를 얻기 위해서 줄 선 것을 볼 수 있으니 오래됐을 것이다. 우리는 합당한 이유 없이 타인과 공동체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도덕적 규칙을 알고 있다. 생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인식은 문명이 주입한 게 아니라, 자연이 군집생활을 하는 호모사피엔스에게 심어준 '사회적 본능'이라고 한다. 줄 서기는 군집생활을 한 때부터 사람의 본능으로 자리매김했다 할 수 있겠다.
사회규범인 줄 서기가 노동이 되었다. 사회규범이 아니라면 생기지 않았을 노동. 사람다움을 보여주는 줄 서기가 이제 도구가 된 사람을 보여주고 있다. 그냥, 마냥, 멍하게 아르바이트하는 동안 혹, 치열하게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르바이트하는 동안 자본의 야만스러움을 보게 된다. 옴니채널도 있으니 사라져 안 보였으면 하는 줄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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