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 보기 좋은 구겡거리가 났다고 이리들 서 있노! 영팔이 니 이리 오나! 거기 벅수(바보)겉이 서 있지 말고."
고함 소리에 뻗장나무같이 영팔이 앞으로 나서는데 얼굴은 평소보다 더 길어 보였다. 꾹 다문 입술이 삐죽삐죽 열릴 것만 같았다. 비에 젖어서 눅진눅진해진 새끼줄을 잡아 끊고 치마를 둘러쓴 시체를 윤보와 영팔이 끌어내린다.
"아까운 사람, 엄전코 손끝 야물고 염치 바르더니."
방으로 옮겨지는 시체를 따라가며 두만네는 운다.
"그러기, 매사가 야물고 짭찔터마는."
서서방의 늙은 마누라도 눈물을 찍어낸다.
옮겨지는 시체를 따라 사람들이 방 앞으로 몰릴 때 봉기는 짚세기를 벗어던지고 원숭이같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목맨 새끼줄을 걷어 차근차근 감아 손목에 끼고 난 다음 나뭇가지를 휘어잡으며 툭툭 분지른다. 그 소리에 돌아본 몇몇 아낙들이 머쓱해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잠시였다. 어느새 나무 밑으로 몰려들었다. 바우랑 붙들이, 마을의 젊은 치들도 덤비듯이 쫓아왔다. 모두 엉겨 붙어 나뭇가지를 꺾어 간수하기에 바쁘다. 순식간에 나무는 한 개의 기둥이 되고 말았다. 넋 빠진 것처럼 강청댁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서서방은 주저주저하다가 두만네와 마주 보고 서서 눈물을 짜고 있는 마누라를 힐끗 쳐다본다. 그는 살며시 땅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옷소매 속에 밀어 넣는다. 노상 횟배를 앓는 마누라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이기이 만병에 다 좋다 카지마는 그중에서도 하늘병(간질)에는 떨어지게 듣는다 카더마."
몽톡하게 된 나무를 올려다보며 봉기는 의기양양해서 말했다.
"죽은 나무라서 우떨란고? 효험이 있이까?"
아낙 한 사람이 미심쩍게 말했다. 봉기는 씩 웃는다. 죽은 사람의 정기를 받아 약물이 된다는 믿음에서 모두들 덤벼들어 꺾은 것인데 죽은 나무여서 과연 정기가 통하겠느냐는 아낙의 의심이다. 병에 효험이 있기로는 목을 매단 끈이나 새끼줄이 제일이라는 것이 예부터 전해져 내려온 말이었다. 남 먼저 그것을 차지했으니 봉기로서는 대만족이 아닐 수 없다.
"갈밭 쥐새끼 겉은 놈!"
침을 칙 뱉으며 한조는 봉기 모르게 욕설을 퍼붓는다.
조석으로 대하던 이웃의 죽음을 보면서 불로초도 아니겠고, 하늘에서 뿌려지는 엽전도 아닌데 욕심을 내어 뒤질세라 서둘렀던 아낙들은 차츰 제풀에 민망해져서 떠들기 시작했다. 함안댁이 불쌍하다는 것이요, 정히 여자로서는 본볼 만한 사람이었다는 칭찬이다. 칭찬이라도 하면 노염을 탄 영신이 무정한 자신들을 용서해주리라, 그런 생각이라도 하는 것처럼.
*뻗장나무 : 미련스럽게 고집을 부르는 모습, 혹은 뻣뻣하게 굳은 모양새.
토지 2권 420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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