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에서 임이네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녁이 좀 들어와야겄소."
"내가?"
"그라믄 우짤 기요? 이 차중에 아무도 없이 우찌 아일 낳을기요?"
"내, 내가."
"그, 그라믄 우짤 기요? 누구 자식인데 이녁이 그러요!"
화내는 소리에 용이는 더듬듯 마루를 올라선다. 방문을 연다. 문바람에 등잔불이 흔들렸다. 벽을 짊어지고 앉은 임이네는 무서운 눈으로 용이를 노려본다.
머리를 벽에 부딪으며 임이네는 소리를 질렀다. 진통이 오는 모양이다.
"아이구우, 어매! 나 살리주소!"
두 손을 쳐들고 허공을 잡는데 이빨과 이빨이 부딪는 소리가 들렸다. 눈알이 튀어나올 듯, 이마에서 두 볼에서 구슬땀이 솟아나온다. 임이네는 앞으로 넘어져 오며 두 팔로 용이 정강이를 안는다. 여자의 팔은 쇳덩이같이 단단했다. 두 팔은 용이 정강이를 조이며 물려들었다.
"보소!"
물려들어온 팔이 풀어지면서 임이네는 자리에 쓰러진다. 진통이 멋은 것이다. 빛나는 눈이 용이 얼굴을 올려다본다.
"어지간했이믄 혼자 놓을라 캤소. 무섭아서, 우짠지 이분에는 무섭아서. 벌써 여러 날 전부터 배가 아프믄서 자꾸 끄는 기이 심상치가 않소. 구실이할매도 아프다 카고. 누가 와줄라 캐야제요. 나는 팔자 치리 못한 여자니께 밭이사 나쁘겄지마는 씨는 이역 씨 아니오?"
임이네는 차분하게 말을 했다. 조금 전의 처참했던 얼굴은 고통 뒤의 평화스런 휴식으로 돌아와 있었다. 슬기롭고 신비하기조차 했다. 땀에 흠씬 젖어서 아름다웠다. 그러더니 임이네는 잠이 드는가 싶었다.
"으아악!"
임이네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뛰어 일어났다. 그 무서운 비명이 몇 번 되풀이되었을까. 여자의 몸이 활처럼 휘어지는 것을 보는 순간 용이는 사슬에서 풀려난 것처럼,
"이, 임자!"
울부짖으며 임이네를 안았다. 임이네는 떠밀었다. 무서운 힘이었다. 용이는 나자빠지면서 무엇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 시간도 멎어버린 것 같은 정적이, 그러고 나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파도처럼 방 안에 퍼지고 울렸다. 임이네 얼굴에 승리의 미소가 떠올랐다.
"보소"
이번에는 환하게 웃었다. 용이는 손바닥으로 여자 얼굴 위의 땀을 닦아준다. 물결치듯이 용이 전신은 떨고 있었다.
"이러고 있일 기이 아니라 보소, 탯줄부터 끊어주소. 저기, 저어기 가새하고 실이 있거마요."
용이는 가위와 실을 잡는다. 임이네 시키는 대로 한다.
"와 그리 떨고 있소? 아이는 닦아서 저기 포대기에 싸가지고 내 옆에 눕히주소."
역시 시키는 대로 한다. 검붉었던 아이 얼굴은 차츰 붉은 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충만된 기쁨을 서서히 감당해가면서 임이네는 용이에게 지시했다. 여왕벌같이 위엄에 차 있었고 자신에 넘쳐 있다.
토지 3권 240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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