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선의 집에 이른 봉순이는,
"아지매요!"
하고 부르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추위에 입술이 굳어져서 목소리가 작았다. 방 안에서 도란도란 씨부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지매요!"
"누고오!"
"나 봉순이오!"
얼른 방문이 열린다.
"아이고오, 봉순이구나. 이 칩운 날에 니가 우짠 일이고. 어서 들어오니라."
"봉순이가 왔다고?"
월선이 뒤에서 김서방댁의 거무튀튀한 얼굴이 나타났다.
"김서방댁!"
방 안으로 들어선 봉순이는 그만 울음을 터뜨린다.
"와 이라노. 봉순아."
월선이는 딱해하며 봉순이 등을 두드리고 김서방 댁은 입을 비죽비죽하다가 함께 따라서 눈물을 흘린다. 자기도 울면서 우지 마라, 하며 때 묻은 치맛자락을 걷어 눈물을 닦는다. 김서방 댁의 행색은 말이 아니었다.
"김서방댁은 우찌 사요."
겨우 봉순이 눈물을 거두고 묻는다.
"죽지 못해 사는 거지 머."
찐찐한 코를 치맛자락으로 닦으며 김서방 댁이 말했다.
"그 말 좀 참았이믄 이런 고생은 안 할 긴데."
월선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 말이가."
"야."
"내사 못 그런다. 빌어묵었이믄 빌어묵었지."
했으나 얼굴에는 후회하는 빛이 역력하다. 풀이 죽는다. 그러나 날개를 털고 일어나듯 그는 목청을 가다듬고 씨부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나가다간 밤을 새워도 끝이 안 날 모양이다. 그러나 언제 나갔던지 월선이 접시 하고 탕기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김서방댁, 떡 좀 삽시다. 엿이 있어서 좀 녹여 왔는데."
월선이 말에 이야기는 중단되었다.
"떡을 사다니? 원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디 있노?"
"생업인데 사야지 그냥 묵겄소?"
"반갑은 봉순이가 왔는데 떡을 해서라도 믹이 보낼 긴데 야박스런 소릴 다 하는고나."
여전하게 내일 끼니가 없을지라도 인심 좋은 말을 하며 김서방 댁은 접시를 들고 마루로 나간다. 콩가루에 굴린 인절미를 접시에 듬뿍 담아 들고 들어온다. 월선이는 떡 값을 셈해서 억지로 쥐여준다.
"내사 싫다. 안 받을란다!"
김서방댁은 월선의 팔을 떠밀어낸다.
"김서방댁이 안 와도 봉순이가 왔이니께 장에 떡 사러 갔일기요. 암 말 말고 받으소."
한참 승강이를 하다가 겨우 돈을 받은 모양인데 김서방댁 표정은 몹시나 서글퍼 보인다.
"봉순아, 엿에 찍어서 떡 묵고 있거라. 김서방댁도 오고 했이니 잠시 나가서 점심해 올 기니."
"아니오, 아지매. 나 점심 생각 없소."
"머 점심할 것 있나. 식은 밥 있이믄 국밥이나 끓이라모. 속이 떨리서 따끈한 국밥이."
말하는 김서방댁은 배가 고픈 표정이다.
월선이가 나가자 김서방 댁은 봉순에게 떡 먹기를 권하면서,
"참말이제 장사도 해묵기가 어럽다."
"나 애기씨한테 가서 말 좀 해보께요."
"말 마라. 집안만 시끄럽어질 기다. 참말이제 어서어서 애기씨가 커서 그 살림 차지하믄 나 달리서 갈 긴데."
"그기이 어디 쉽겄소."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월선이 잽싸게 국밥을 끓여서 들여왔다.
세 여자는 머리를 맞대고 뜨거운 장국밥을 먹는다. 김서방 댁은 땀을 흘리며 달게 먹는다. 혹이 붙은 것같이 마디가 굵은 손을 들어 땀을 씻곤 하는데 마디가 굵어져서 빼질 못하였는지 다 닳아빠진 납가락지가 번득거리곤 한다.
토지 4권 296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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