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삿날 밤, 내외는 목욕재계하고 제상을 차렸다. 한지를 깐 제상에 괸 제찬은 조촐했다. 지방을 모셔놓고 의관을 차려입은 용이 분향을 하고 재배한 뒤 자리에 꿇어앉았다. 소복한 강청댁이 술을 따라 내미는 잔을 두 손으로 받은 용이는 모사에 세 번 따르고 술잔을 강청댁에게 넘긴다. 강청댁이 술잔을 제상 위에 올려놓고 정저 하는 동안 용이 다시 재배한다. 축문을 읽고 강청댁이 두 번째 잔을 올리고 종헌한 뒤 첨작하고 나서 강청댁은 메 그릇의 뚜껑을 열었다. 메에다 수저를 꽂는다.
용이와 강청댁은 제상 밑에 오랫동안 엎드려 있었다. 강청댁의 작은 어깨가 물결쳤다. 소리를 내지는 않았으나 전신으로 울고 있었다. 제상에는 촛불이 흔들리고 있었다.
지방과 축문을 불사르고 제수를 물릴 것도 잊은 두 내외는 양켠으로 갈라져 앉아서 서로들 멀거니 바라본다. 향도 꺼지고 방 안에는 향내만 감돌았다.
강청댁은 제찬을 나누려고 함지를 이고 마을로 나섰다. 두만네 집 개가 먼저 짖는다.
"성님! 두만네성님!"
두만네 삽짝 앞에서 문을 흔든다. 개는 미친 듯 짖어댄다.
"누고오-."
잠에 취한 두만네 목소리, 방에 불이 켜졌다. 방문을 열고 나온 두만네가 말했다.
"제사 모싰나?"
"야."
설기 한 귀퉁이를 뜯어버리고 다시 한 귀퉁이를 뜯어 맛을 본다.
"간이 맛네."
"혼자서 짭찔하게 장만했네. 아닌 게 아니라 너거 집에 제사 때가 됐을 긴데 하구 생각은 했다마는 오라는 말도 없고 해서 거들어주지도 못했고나. 울었나? 눈이 와 그리 부었노?"
"논(설움)이 나서 좀 울었소."
"울기는 와 우노. 사람 사는 기이 다 그런 긴데 섭하게 생각지 마라."
강청댁이 나서려 하자,
"보래."
하며 두만네가 불러 세운다.
"제사 음식 몇 집 돌렸노?"
"여기가 첨이오."
"한참 걸리겄네."
"걸리겄지요."
"그런데 말이다. 이런 말 하믄 니가 우찌 생각할 긴고 모르겄다마는 임이네 빼놓지 마라이?"
"......."
"아무리 틀어져도 음식 가지고 그러믄 안 되네라."
"......."
"이웃사촌이더라고, 하로 보고 말 것가. 강청댁 니도 좀 지나친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더라."
"알겄소!"
강청댁이 성이 나서 돌아섰다.
다음에는 함지를 인 강청댁이 평산의 마당으로 들어갔다. 함안댁은 문 가까이 호롱불을 내놓고 웃었다. 강청댁은 마을에 제사 음식을 다 나누고 맨 마지막에 임이네 마당으로 들어섰다. 임이네는 그릇을 비우면서 잘 지내보자는 시늉으로 이 말 저 말 걸어왔으나 강청댁은 입 한 번 떼지 않고 함지에 빈 그릇을 착착 담아서 돌아섰다.
"빌어묵을 년, 그럴라 카믄 머할라꼬 음식은 가지오노. 내사 비상 섞었이까 무섭네."
임이네는 침을 뱉으면서도 떡 한 귀퉁이를 뚝 잘라서 입이 미어지게 먹는다.
* 모사 : 제사에서 쓰는 그릇에 담은 모래와 거기에 꽂는 띠의 묶음
* 정저 : 혼백들이 제물을 흠향하라는 뜻으로 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음
* 종헌 : 제사 지낼 때에 세 번째로 술잔을 올림.
토지 2권 270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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