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글쓰기/토지 속 인생이야기

3 함안댁의 인연이야기

밭알이 2022. 4. 9. 23:48

  함안댁은 팔짱을 끼었다. 
  "이런 얘기가 있지."
  침을 한 번 삼켰다. 이렇게 되면 함안댁 입에서는 긴 얘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옛적에 어느 재상가에 사기장수가 하룻밤을 묵어 갔더라네. 그런데 다음 날 사기장수가 떠난 뒤 재상 부인도 온데간데 없어지고 말았지. 사기장수를 따라 도망을 친 거라. 재상은 망신스럽기도 했으나 그보다 더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식음을 전폐하고 생각했으나 세상에 기러울 게 없는 재상 부인이 사기장수를 따라간 연유를 알 간이 없었더라네. 그래서 재상은 벼슬을 내려놓고 부인을 찾아 그 연유나 알아보아야겠다고 팔도 방랑길을 떠났는데, 어느 날 깊은 산골에 이르러 해는 떨어지고 길은 더 갈 수 없고 해서 마침 외딴 수숫대 움막집을 찾아 들어갔더라네.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 아낙 하나가 밥상을 들고 들어오는데 이게 웬일인가, 바로 그 아낙이 재상의 부인이 아니었겠나? 하도 기가 차서 재상이 부인 고개를 드오, 나를 모르겠소? 하고 말하니까 부인은 얼굴을 숙인 채 알면 뭐하고 모르면 뭐하겠느냐, 다 인연이 한 짓이라 아무 말씀 마시고 돌아가달라고 대답을 하더라네."


  "그래 그 연놈을 가만히 두었는가요?"

  강청댁이 말티를 넣었다.


  "이얘기나 들어라. 그래 수숫대 움막집을 하직하고 나선 재상은 그 곱던 손이 갈구리가 되고 옷은 살만 가렸다 뿐이지 남루하기가 거렁뱅이 꼴이요 재상댁에서는 말도 못 먹는 험한 음식을 마다 않고, 화전을 일구어서 사는 부인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는데, 재상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부인의 팔자, 인연을 되새겨 생각해 보았더라네. 집에 돌아온 재상은 전생록을 펼쳐보고 처음으로 모든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데 전생록에 재상은 중이었고 사기장수는 죽은 곰이었고 부인은 이였더라네."
  "저런!"
  "어느 날 중이 산길을 가다가 제 몸에서 이 한 마리를 잡았는데 살생을 못 하는 중은 잡은 이를 어쩔까 망설이는 판에 마침 죽어 자빠진 곰 한 마리가 있어서 거기다 이를 버리고 길을 떠났다네. 그러니 인연이라는 것도 그렇고 잘살고 못사는 것도 모두 전생에서 마련된 것 아니겠나?"

 

  아낙들은 멍해서 함안댁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전생에 멋이었을꼬?'
  그런 눈들이었다.


토지 1권 116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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