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글쓰기 이론

말과 글과 생각의 관계

밭알이 2022. 4. 9. 23:15

  교사나 교수들의 강의, 무슨 연구발표회 같은 자리에서 하는 강연을 들을 때마다 크게 느끼는 것은 저게 '말'이 아닌데, 저건 글인데 하는 것이다. 말이 아닌 글이요 문장을 입으로 말한다는 느낌이다. 말을 하면서 그 말이 말이 아니고 글에 가깝고 글이 되어버리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것은 매우 좋지 못한 현상이다. 말과 글, 이 두 가지에서 말할 것도 없이 말이 먼저 있는 것이고 글은 말을 따라가는 것이다. 말이 으뜸이고 뿌리다. 그런데 거꾸로 글을 따라 말을 하게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말이 병들기 때문이다. 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예사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 말이 병들어 가고 있는 현실이다.
  강의를 하든지 강연을 하든지, 말을 팔고 있는 사람은 대개 그 말을 팔아먹는 노릇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데, 언제나 책을 읽고 책 속에서 자기가 말할 자료를 찾고 준비를 하게 된다. 그가 하게 되는 말은 책에서 나왔고, 말씨며 책에 써 놓은 글같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말이 책에 써놓은 글에 매달리고 따라가다 보니 말은 간 곳 없이 되고 어설픈 글만 남는 것이다. 말을 떠난 글의 세계, 그 맛 없고 삭막한 세계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한다. 말과 삶이 사람의 세계, 뭇사람들의 세계로 찾아가야 한다.

  지식인들의 말과 글이 백성들의 말이 아니고 남의 말글을 따르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생각이 남의 것, 즉 백성들 속에 살면서 그 삶에서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 책에서 얻은 지식이요 관념이라는 것을 말한다. 지식이나 관념만으로 자기의 관점을 세워나갈 때 문제가 일어난다. 책에서 얻은 사상은 자기의 삶에서 몸으로 가지게 된 생각과 하나로 될 때 비로소 그 사상은 제것으로 된다. 제것은 없고 지식만 가지고 제것인양 여긴다면 그것은 문제다.
  말은 잘못되었는데 생각만은 바르게 가질 수 있는 것인가? 그럴 수 없다고 본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좋은 사상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남의 나라의 앞선 지식인들이 펼쳐놓은 사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 앞선 지식인들은 모두 자기 나라 말로 자기 나라 글로 생각을 표현해 놓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생각은 우리 말로 나타낼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앞선 사상이라도 남의 나라 말투로 적어 놓았다면 그것은 우리 것이 아니다.
  삶 속에서 몸으로 세우지 못한 생각은 우리 것이 아니다. 삶 속에서 우러난 생각은 삶의 말로 밖에 표현할 도리가 없다.

  문장의 기교란 것은 어떤 사물을 잘(자연스럽게, 살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 필요하다. 기교 때문에 사물이 안 보이고, 기교만 눈에 띈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되었다.
  소설은 인간의 삶을 이야기한 글이다. 우리 소설은 우리의 삶을 보여주고 이야기한 글일 수 밖에 없다. 우리 삶을 말하는 글이 삶의 말이 아닌 글말, 남의 나라 글을 따르고 옮겨 쓴 말이 되어서 어찌하겠는가?
  글이 이렇게 된 까닭은 글을 쓰는 사람의 생각과 삶이 우리 것을 잃은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우리 나라에는 글을 쓰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지금 우리 나라의 문학은 시고 소설이고 할 것 없이 삶 속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민중의 말에서 떨어져나가 공중에 붕 떠있는 상태가 된 것은 아닐까?

<우리글 바로쓰기1>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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