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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전후 외 > 요약

밭알이 2024. 4. 1. 12:00

  이태준의 소설은 ‘정극’을 본 느낌이었다. 이야기들은 무겁고 사실적이고 친숙했다. 이렇게 써 볼까? 이태준은 근대의 자리에서 현대를 써 내려간 작가다? 그리고, 문학에 초짜인 내게 ‘이태준’은 낯설다.

 

  <해방 전후 외>는 ‘두산동아’에서 한국소설문학대계를 기획하고 스무 번째로 출간한 이태준의 단편소설집이다. 광복 50주년을 맞고 근대문학 100년 즈음인 1995년에 발행되었다. 김윤식, 박완서의 감수와 류보선, 서영채, 권성우의 편집, 황종연의 해설을 더했다. 감수 및 편집위원들의 첫 번째 편집태도는,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분단현실과 냉전논리 속에서 정당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던 작가와 작품을 복권시키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이는 일차적으로, 이데올로기적 대립에 의해 부당하게 사장되었던 작가들을 부활시키는 일에, 더 나아가서는 기형적으로 일그러져 있던 소설사의 원형을 복원시키는 일에 해당된다…(하략)’였다.

 

  이러한 편집태도 덕분에 너무 늦지 않게 이태준의 작품을 접할 수 있게 된 듯하다. 그러나 내가 접한 것이 2023년이니 그것도 늘그막에 관심이 생겨서 알게 된 것이니 왜곡은 고치기 어렵고 간극은 줄이기 힘들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해방 전후 외>는 모두 이십 편의 소설을 담았다. 열여덟 편의 단편소설과 해방 전후를 살아내는 ‘한 작가의 수기’라고는 하지만 분명 자신의 이야기인 <해방 전후>, 그리고 중편소설이라고 해야 할 분량의 <농토>로 구성됐다.

  단편소설은 25세인 1929년에 발표한 <그림자> 외에, 조선중앙일보를 퇴사하고 창작에 몰두한 1935년부터 강원도에 칩거한 시기인 1943년까지의 소설들이다. 사랑을 이루고 싶거나 늙은 나이를 살아가는 기생들 <그림자> <산월이>, 밥 먹듯 속으며 처지가 나빠져만 가는 반편이 <달밤>, 고향을 떠나 서울에 정착하려 애쓰지만 아내를 잃고 분노하는 자 <꽃나무는 심어놓고>, 시한부 처녀 <까마귀>, 죽어가는 젖먹이를 묻으러 가는 노동자 <밤길>, 만주로 이주해 목숨 걸고 정착하는 이들 <농군>, 땅을 팔라는 자식과 갈등을 겪는 이<돌다리>, 광산에 꽂혀 죽을 때까지 허황된 꿈을 좇는 노인 <영월 영감>, 아들의 죽음으로 호수를 메꾸려는 노파 <무연>  등등 인간군상의 각양 기구한 삶을 그렸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도 적지 않다. 시내나들이를 하며 아내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장마>, 나이 든 기생에 빗대어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는 <패강냉>, 도회미의 처녀에게 사념이 생겼다가 애틋한 우정을 경험하는 <석양>이 그렇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나’로 가장 많이 등장하고, ‘현’, ‘한’, ‘매헌’으로 등장하는데, 이름으로는 ‘현’을 즐겨 썼다.

 

  1948년 발표된 <농토>는 주인공 억쇠가 땅과 얽혀 세상을 인식하고 뚜렷하게 변화하며 목표를 성취하는 이야기인데, 다분히 이데올로기적인 소설이다. 이에 대해, 편집위원인 류보선은 한 기고문에서 이렇게 썼다.

 

  ‘이태준은 … 물신화된 사회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떠밀려가는 모습을 비극적으로만 형상화하던 그의 소설 세계를, … 1930년대 후반에는 … 급격하게 현실적 모순에 눈 돌리는 … 세계로 나아간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이태준은 ‘나는 해방 후에도 의연히 처세만 하구 일하지 않는 덴 반댑니다’ …라며, 임화 등의 경향 문학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다.’

 

  한편, 논과 땅은 이 시기의 주된 이야깃거리 같다. 한탕 벌 욕심에 땅을 팔은 후 광복을 맞아 땅을 도로 되찾을 줄로 아는, 하지만 되찾지 못하고 나라를 원망하는 한 생원의 이야기인 채만식의 <논 이야기>와 비교하여 읽어보면 재미가 있다.

 

 

  이태준은 MZ 세대들에게는 친숙한 이름일 것이다. 아니, 적어도 들어는 봤을 이름이다. 학교에서 졸음으로 국어시간을 점철하지 않았다면. 이태준의 소설을 읽는 것 하나로 되겠냐 만은 이태준의 소설은 우리가 몰랐던 왜곡과 간극을 조금은 고치고 얼마간 좁히는 계기가 될 만하다.

 

 

*문학작품의 ‘요약’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유시민 작가는 글쓰기의 시작이 ‘요약’이라고 했는데, 그 시작조차도 수월하지 않다. 벌써 두 해 전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과 <표현의 기술>에서 발췌한 ‘발췌요약’을 다시 읽어 보았다. 이해와 공감, 말하자면 독해력이 부족해서 점점 어려워진 것인가! 한편으론 한 번 쓰기는 힘든데 정작 많고 많은 그렇고 그런 잡스런 글 하나 더하는 것일 뿐이지 않는가!

문학작품의 요약을 할까 말 까. 몇 번의 요약 ‘경험’을 생각해 보면 요약을 하면 ‘소화해 냈다’는 감상이 생겼다. 초라하든 우습든 엉터리이든 설사를 하고 말든 소화해 보려고 애쓴 흔적을 남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