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유시민 작가)는 우리말의 가장 큰 매력이 토씨에 있다고 생각한다. 토씨는 뜻을 압축해서 전하는 수단이며 문장에 감칠맛이 돌게 만드는 조미료이기도 하다. 다양한 토씨를 적절하고 정확하게 쓰는 아이는 언어 능력이 뛰어난 어른이 된다. 우리말에는 다양한 주격조사가 있다. '이''가'를 많이 쓰지만 맥락에 맞추어 '은''는'이나 '도'를 쓰기도 한다.
소개팅을 하고 온 어떤 여자한테 '절친'이 이렇게 물었다고 하자. '그 남자 어때?' 대답은 네 가지가 있다. '키도 커''키는 작아''키는 커''키도 작아'. 이 네 가지 대답 모두에서 토씨가 핵심 정보를 전달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키도 커'는 이런 뜻이다. 그 남자 돈 많고 교양 있고 직장 좋고 심지어 키도 커. '키는 작아'는 괜찮지만 그보다는 조금 못 할 때 쓴다. 그 남자 돈 많고 교양 있고 직장 좋은데 아쉽게도 키는 작아. '키는 커'는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 그 남자 돈 없고 교양 없고 직장 시원치 않은데 키는 커. '키도 작아'는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 그 남자 돈 없고 교양 없고 직장 시원치 않은 데다 키도 작아. 토씨는 이렇게 쓰는 것이다. 단 한 글자 토씨에 이렇게 많은 뜻을 담을 수 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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