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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요약(?)

밭알이 2023. 5. 26. 12:00

  2000년 11월 21일. 파리. 이 계절의 파리는 황량하다. 이 날은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고 비까지 내리는 날이었다. 박성창의 마음은 날씨 때문에 더욱 뒤숭숭했다. 박성창은 파리 7구에 위치한 루테티아 호텔에 5분 일찍 도착했다. 쿤데라는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1929년 생이니 그 당시 일흔두 살인 쿤데라는 나이보다 십 년은 젊어 보였다. 큰 키에 주름살이 없는 건강한 얼굴,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강한 체코어 억양이 섞인 프랑스어를 쓰고 있었다. 호텔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부인인 베라 쿤데라가 반갑게 맞아준다. 쿤데라에게 15년 만의 인터뷰다. <불멸>을 쓴 지 10년 만이다.

 

루테티아 호텔, 밀란 쿤데라는 이 곳 한 켠에서 대담자를 기다리고 있었다(출처 Paige Donner).


  처음에는 주로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다른 여러 화제들로 이어졌다. 쿤데라는 1975년에 프랑스로 망명했는데, 처음에는 렌느라는 부르타뉴 지방에서 살았다. 말하자면 시골인데 프랑스적인 어떤 것을 음미할 수 있어 다행으로 생각했다. <고등 사회 과학원>에서 강의를 하긴 했지만 작가로서 오직 작품에만 전념하고 싶었고 그렇지 못할 때는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번역의 문제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도 했다. 그래도 <불멸>에 대해서는 프랑스어 번역본이 원본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선언까지 했다. 최근 작품 <향수>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기억'에 대해 얘기했다.
  '... 기억과 망각의 주제가 20세기의 커다란 주제임은 틀림없습니다.... 기억은 무엇인가, 기억의 능력은 무엇인가, 인간에게 기억의 능력은 너무나도 미약한 것이 아닐까, 기억은 망각의 한 형태는 아닐까.'
  인터뷰는 쿤데라의 소설 형식으로 넘어갔다. 쿤데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을 수 있는 텍스트, 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는 긴 텍스트를 싫어한다. '소설'을 소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남는 게 없다. 쿤데라의 소설은 각 장이 독립적이고 어느 장을 펼치더라도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지향한다. 박성창은 <불멸>이 음악처럼 '대위법'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쿤데라는 소설은 소설가보다 위대하다고 댓구한다.
  '...저는 20세기의 소설들은 이른바 <성찰적 소설>에 속한다고 봅니다.... 소설은 인간의 실존에 관한 물음을 던지고 이에 관해 성찰하는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인물들의 유희를 통해 실천해 가는 것이죠...'
  자기 작품에 대해서, <불멸>은 어렵게 느껴질지 모르겠다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전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켰기 때문에 오히려 거리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가 마무리되며 박성창의 사진 한 장 찍자는 요청에 쿤데라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십년 전부터 그 어떤 사진도 찍은 적이 없다고 한다. 대신 쿤데라는 '귤을 하나 들고 와서 건네주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사진 대신 귤을 준 소설가> 쿤데라를 불멸로 이끄는 몸짓이었다.


* '쿤데라와의 인터뷰'에 관한 글은 <세계의 문학, 2000년 겨울호, 민음사>에서 발췌했다. 인터뷰 속 쿤데라에 대한 내용과 소설 <불멸>에 대한 얘기를 골라냈다. <불멸>은 요약되지 않는 소설이라고 한다. 쿤데라 자신이 의도했다. '자신의 소설을 보호하고 싶다면, 그는 사람들이 그것을 각색할 수 없는 방식으로, 달리 말해서 그것을 이야기할 수 없는 방식으로 써야만 한다네.' 애써 요약한다고 해서 <불멸>이라는 소설을 알게 될 것 같지 않다.
  소설 속 쿤데라가 아베나리우스 교수와 대화한 것처럼, 소설 속 주인공 로라의, 로라 자신은 원하지 않았던 불멸을 보여주는 몸짓처럼, 소설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쿤데라와의 대화와 그의 몸짓을 보여주는 것이 <불멸>을 이해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미지를 거부하는 몸짓으로 쿤데라는 우스꽝스러운 불멸을 보여주는 작품 속 주인공이 된다.

* 정지아의 <불멸>에 대한 짧은 정의. '밀란 쿤데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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