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 21일. 파리. 이 계절의 파리는 황량하다. 이 날은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고 비까지 내리는 날이었다. 박성창의 마음은 날씨 때문에 더욱 뒤숭숭했다. 박성창은 파리 7구에 위치한 루테티아 호텔에 5분 일찍 도착했다. 쿤데라는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1929년 생이니 그 당시 일흔두 살인 쿤데라는 나이보다 십 년은 젊어 보였다. 큰 키에 주름살이 없는 건강한 얼굴,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강한 체코어 억양이 섞인 프랑스어를 쓰고 있었다. 호텔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부인인 베라 쿤데라가 반갑게 맞아준다. 쿤데라에게 15년 만의 인터뷰다. <불멸>을 쓴 지 10년 만이다.
처음에는 주로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다른 여러 화제들로 이어졌다. 쿤데라는 1975년에 프랑스로 망명했는데, 처음에는 렌느라는 부르타뉴 지방에서 살았다. 말하자면 시골인데 프랑스적인 어떤 것을 음미할 수 있어 다행으로 생각했다. <고등 사회 과학원>에서 강의를 하긴 했지만 작가로서 오직 작품에만 전념하고 싶었고 그렇지 못할 때는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번역의 문제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도 했다. 그래도 <불멸>에 대해서는 프랑스어 번역본이 원본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선언까지 했다. 최근 작품 <향수>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기억'에 대해 얘기했다.
'... 기억과 망각의 주제가 20세기의 커다란 주제임은 틀림없습니다.... 기억은 무엇인가, 기억의 능력은 무엇인가, 인간에게 기억의 능력은 너무나도 미약한 것이 아닐까, 기억은 망각의 한 형태는 아닐까.'
인터뷰는 쿤데라의 소설 형식으로 넘어갔다. 쿤데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을 수 있는 텍스트, 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는 긴 텍스트를 싫어한다. '소설'을 소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남는 게 없다. 쿤데라의 소설은 각 장이 독립적이고 어느 장을 펼치더라도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지향한다. 박성창은 <불멸>이 음악처럼 '대위법'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쿤데라는 소설은 소설가보다 위대하다고 댓구한다.
'...저는 20세기의 소설들은 이른바 <성찰적 소설>에 속한다고 봅니다.... 소설은 인간의 실존에 관한 물음을 던지고 이에 관해 성찰하는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인물들의 유희를 통해 실천해 가는 것이죠...'
자기 작품에 대해서, <불멸>은 어렵게 느껴질지 모르겠다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전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켰기 때문에 오히려 거리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가 마무리되며 박성창의 사진 한 장 찍자는 요청에 쿤데라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십년 전부터 그 어떤 사진도 찍은 적이 없다고 한다. 대신 쿤데라는 '귤을 하나 들고 와서 건네주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사진 대신 귤을 준 소설가> 쿤데라를 불멸로 이끄는 몸짓이었다.
* '쿤데라와의 인터뷰'에 관한 글은 <세계의 문학, 2000년 겨울호, 민음사>에서 발췌했다. 인터뷰 속 쿤데라에 대한 내용과 소설 <불멸>에 대한 얘기를 골라냈다. <불멸>은 요약되지 않는 소설이라고 한다. 쿤데라 자신이 의도했다. '자신의 소설을 보호하고 싶다면, 그는 사람들이 그것을 각색할 수 없는 방식으로, 달리 말해서 그것을 이야기할 수 없는 방식으로 써야만 한다네.' 애써 요약한다고 해서 <불멸>이라는 소설을 알게 될 것 같지 않다.
소설 속 쿤데라가 아베나리우스 교수와 대화한 것처럼, 소설 속 주인공 로라의, 로라 자신은 원하지 않았던 불멸을 보여주는 몸짓처럼, 소설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쿤데라와의 대화와 그의 몸짓을 보여주는 것이 <불멸>을 이해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미지를 거부하는 몸짓으로 쿤데라는 우스꽝스러운 불멸을 보여주는 작품 속 주인공이 된다.
* 정지아의 <불멸>에 대한 짧은 정의. '밀란 쿤데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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