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용산역으로 들어가고 있다. 서의돈은 신문으로 얼굴을 덮고 코를 골고 있다. 대학생 차림의 청년이 흔들어 깨운다. '용산입니다, 형님' 선우일의 동생, 선우신이다. '개새끼들!' 서의돈은 눈에 핏발이 서서 시뻘겋고 험했다. 동경에 머물러 있던 선우신에게 서의돈이 노무자 꼴로 불쑥 찾아왔었다. 이삼 개월 신세를 져야겠다면서. 한데 며칠이 안 되어 관동대지진이 발생했다. 생지옥. 유언비어에 선동된 군중이 닥치는 대로 조선인을 참살했다. 유언비어의 근원은 일본의 위정자들이었다. 오천이 넘는 조선인들의 목숨 따위, 그들에게는 빈대로 보였을지 모른다.
'신상, 신상!' 서울역에 내린 선우신을 안경 쓴 사내가 급히 불러댔다. 그의 뒤에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주춤거리듯 여자가 따라온다. 오가타 지로다. 여자는 유인실. '이번에 우리 동포에게 많은 도움을 주어서 고마웠소' 선우일과 서의돈이 인사한다. 두 사람의 동행에 서의돈이 빙그레 웃는다.
오래간만에 원고료를 받은 상현은 시 쓰는 친구, 평론한다는 사람들과 어울려 기생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산호주를 만났다. 전주에 갔을 때 상현을 기화 있는 집까지 데려다준 기생이다. 기화 생각이 문득 떠올라 상현은 냅다 소리를 지르며 산호주를 물리친다. 사내들은 마시고 떠들고 있다. 허겁지겁 술을 마시고 논쟁을 한다. 뭉뭉한 공기와 열기, 담배 연기와 술 냄새. 아편과도 같은 이 분위기는 세상을 떠난 부친도, 조용하와의 결혼으로 충격을 준 명희도, 잔인하게 버린 기화도 잊을 수 있게 해 준다.
상현은 신발을 걸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산호주가 나타났다. 상현이 소피를 보고 나왔을 때 산호주는 팔짱을 끼고 앉아 있다. '서방님, 왜 묻지 않으십니까?' '아항, 그래, 기화는 잘 있느냐?' 산호주는 상현의 옷깃을 찢어발기듯 강하게 잡아 젖혔다. '이게 미쳤나!' '잘 들으시오. 기화 언니가 애기를 낳았소.' 상현이 얼굴을 번쩍 쳐들고 악을 쓴다. '기생 년도 애비 있는 자식을 낳아? 일없어!' 산호주의 손이 상현의 뺨따귀를 갈긴다. 상현의 손도 산호주의 뺨을 향해 날았다. 상현은 쏜살같이 밖으로 뛰어나가고 담벼락에 머리를 처박고 쓰러진다. 상현은 산호주의 방에서 사흘을 앓는다. 급성폐렴이다. 헛소리를 한다. '아버님! 불효자식을 용서하옵소서'
일본으로 시집간 장이가 친정에 다니러 왔다. 홍이는 장가든 후 운전일을 하며 평사리에서 부산, 통영을 전전하고 있었다. 장이 소식을 들은 홍이는 가슴에 칼질을 당한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일본에서 사고무친인 장이의 처지 때문이다. 장이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회한 때문이다. 통영에 접어들어 차고에 차를 집어넣고 눈을 감는다. 얼마 동안이나 지났을까. 장이가 불쑥 나타났다. 장이는 울기부터 했다. '일본 있는 그 사람하고는 아, 정이 안 붙어서 살 수가 없소.' 장이 몸이 홍이에게 와락 실려왔다. 두 번째 밤, 이들의 관계는 깊어지고 말았다.
다음 날 밤, 이들은 이별을 두려워하면서 말없이 포옹하고 있었다. 갑자기 차고 문이 부서질 만큼 요란한 소리가 났다. 홍이 화다닥 일어났다. '숨어!' '어, 어디로!' 차고 문을 열었을 때 중 늙은 여자와 그의 아들인 듯 두 청년이 뛰어들었다. 장이의 시고모, 사촌 시동생이었다. 두 청년은 위풍당당 차고 속을 뒤지고, 장이가 끌려 나온다. 두 청년이 달려든다. 홍이와 장이는 비참하게 맞았다. 문을 활짝 열어젖히니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새벽녘까지 실랑이는 벌어졌다. 장이는 그들에게 끌려갔고 홍이는 기다시피 비탈진 셋방으로 돌아와 쓰러지고 말았다. 사흘이 지났을 때 보연이가 왔다. 홍이는 애원하고 울고 또 소리쳤다. 열흘이 지났을 때 보연이는 또다시 왔다. '인제 걱정 없소. 남편이 와 고소도 안 하고 계집을 달래서 일본 데리고 갔답니다.' 남편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놓여난 보연이는 관대했다. 보연은 그 어느 것보다 소박 당할 것을 무서워했던 것이다.
최참판댁의 기둥 군데군데 초롱이 내걸려 있다. 제상에 멧밥이 올라갈 무렵 윤씨부인 무덤에 쉬어가는 한 사나이가 있다. 사내는 환이었다. '제삿밥 잡수러 가셨겠군요.' 풀섶에 담배를 비벼 끄고 엎드려 절을 한다. 환이는 마을에서 발길을 돌린다. 김환은 산청 장 객줏집에서 붙잡힌다. 연일 심문과 고문을 받고 독방으로 옮겨졌다. 다음 날 스스로 목을 졸라서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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