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칠팔 년 전이었던가, 혜관이 기화와 함께 용정을 찾아온 것이. 그 후 다시 한번, 세 번째 방문한 셈이다. 공노인은 곰방대를 물고 있다. 그 간에 일어나 봉순이의 죽음과 길상이가 붙잡히게 된 사연, 양녀 송애를 꼬여낸 김두수의 행패를 얘기한다. 늙어버린 공노인은 허둥지둥 마누라를 보고 온다. 오늘내일하는 마누라를. 혜관은 해란강을 바라보며 찰나의 생멸, 번뇌 끝에 오는 반야에 빠진다. 주갑이 공노인네로 들어섰다.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이 술 처먹은 모습이다. 주갑의 얼굴에도 외롭고 쓸쓸한 빛이 서려있다. 혜관과 인사하고 상호 간 소식을 전하는데, 공노인은 이용이, 그것보다 홍이에 대한 서운함과 그리움이 솟아오른다.
최서희와의 담판이후 십 년이 지났다. 서희에 대한 복수도 생각했었지만 이제 육십 대 중반기에 들어선 조준구. 오천 원을 밑천 삼아 전당포, 고리대금으로 사오만의 재산을 모았고 그 재산 관리만으로도 힘에 벅찬 나이다.
팔월이 거의 끝날 무렵, 조준구는 서울역으로 향하였다. 이등 찻간으로 들어가며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저, 저게 누구야!' 김평산이가 앉아 있는 착각을 한 것이다. 비대한 모습의 김평산 그대로의 모습, 그는 김두수였다. 김두수가 먼저 조준구를 알아보았다. '조준구 씨!' 별안간 들려온 소리에 조준구는 벼락이 떨어진 것만큼 놀랐다. 살인자의 자식 놈, 김두수를 알아보고 얼굴이 씨뻘게진다. 살인 사주를 포함하여 자신의 과거를 소상하게 알고 있음을 깨닫고 두려워한다. 김두수는 유유자적 자리를 일어섰다.
배는 하얗게 물살을 가르며 달려가더니 조준구를 통영에 내려놓았다. 여관에 자리 잡은 조준구는 나전칠기를 제일 잘 만드는 사람을 찾았다. '곱새 소목장이를 찾으신다구요.' 대답하는 안주인에게서 소목장의 유명세와 그 자식들의 총명함을 전해 들었다. 여관 심부름꾼을 앞세워 곱새 소목의 집으로 나섰다. 기찹은 사람들의 마을, 그중에서 중류는 되는 것 같은 집. 병수의 곱추 모습이 나타났다. 십여 년 만에 만나는 부자였다. 준구는 어색해했지만 병수는 흥분하는 기색이 없다. 조준구는 손자를 챙겨서 조 씨 가문을 공고히 하고 싶어 했다. '늙으신 아버님께 폐를 끼치지는 않겠습니다.' 거절이 분명하다. 자식 하나쯤은 옆에 있어야 되겠다고 한번 더 얘기하지만 '아버님께 가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병수는 확고하다. 조준구의 얼굴이 시뻘게지고, 노발대발 노여움으로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병수의 얼굴은 새파래지고, 밖에서는 '저 노인이 뉘냐'며 막내가 병수댁네에게 물었다.
순철이가 모래밭에서 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는 환국이를 부른다. 건강한 체구, 거무스름한 낯빛, 나이보다 훨씬 숙성한 모습이다. 서희의 수술결과를 물었다. 서희는 환국이와 함께 길상을 면회하고 나서 맹장염에 걸렸었다. 수술결과는 다행이었다. 이어 양소림의 약혼을 얘기한다. 순철이 눈에 증오의 빛이 이글거린다. 양소림의 약혼 상대, 허정윤이 결혼을 약속하고 학비까지 보조받은 여자를 버린 것을 알고 있다. 순철이는 혼사를 깨버리고 싶어 하고, 이 말을 들은 환국이 낯빛도 변했다. 양소림의 손에는 커다란 흉터가 있다. 환국은 이성에 대한 호감과 함께 그 손에 대한 혐오감, 혐오감에 따른 자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속이 시원하다. 이제 그 손 생각을 안 하게 될 테니까.' 순철의 커다란 손이 환국의 뺨을 갈겼다. 환국이도 순철이의 가슴팍을 잡고 주먹으로 얼굴을 치고 함께 뒹굴며 싸웠다. 한쪽은 뭘 그렇게 도도하게 구냐고, 다른 한쪽은 말만 가지고 동정한다고 싸운 것이다.
'술 좀 마셨으면.' 그들은 중학교 동창 용칠이네로 향했다. 정석에 대한 얘기와 길상의 감옥생활 걱정을, 다시 양소림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술을 여러 잔 마셨다. 처음 겪는 술기운에 헛구역질을 하다가 등을 두드리다가 다시 양소림 얘기다. '그만두지 못하겠나!' 환국은 소리를 지르며 순철이와 헤어졌다.
이용이 죽었다. 홍이의 사무치는 울음소리, 호들갑스러운 보연의 곡성 말고는 모든 절차가 정연하게 행해졌다. 이제 진주로 돌아갈 보연이 범석에게 걱정을 얘기한다. 홍이가 자주 아버지 때문에 아무 곳에도 갈 수 없다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범석이 홍이에게 물었다. '처남은 어쩔래? 만주 갈 건가?' '가야지.' 의외로 쉽게 대답이 나왔다. 범석이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오는데 보연은 눈물을 훔치며 큰방으로 건너갔다.
명희가 서희를 찾았다. 상현에게서 온 편지 때문이다. 상현과 봉순이에게서 생긴 딸, 양현이의 교육을 명희에게 부탁했다. 지금은 서희가 돌보고 있다. 명희는 양현이를 양딸로 삼고 싶어 하지만 서희는 거절했다. 양현이는 환국이를 좋아하고 윤국이는 더 좋아한다. 윤국이는 서희에게 광주학생사건으로 연일 학생들이 잡혀간다고 불만을 표한다. '너희들이 사슴이면 그들은 사냥꾼인 게야' 얘기하는 서희에게 윤국은 공박으로 나왔다. 이제 윤국이도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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