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글쓰기 22

우리 동네 우리 말 이름 알아보기

중국글자 말이 아닌, 일본말, 서양말도 아닌 내가 사는 이곳의 우리말 이름을 알아보고 싶다. 집에서 출퇴근하는 지하철역은 '돌곶이역'이다. '돌곶이'는 서울지명사전에 '성북구 석관동에 있던 마을로서, 인근 천장산의 한 맥이 수수팥떡이나 경단을 꽂이(꼬챙이)에 꽂아 놓은 것처럼 검은 돌이 박혀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돌곶이마을, 돌곶이말, 돌곶이능마을, 돌곶이능말, 석관동으로도 불렸다'고 나온다. 또는 우이천이 이곳을 흐르면서 지형이 곶이 되어 물이 돌아 흐르면서 돌곶이라는 땅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돌곶이'의 유래를 보면 동쪽의 천장산과 산줄기와 군데군데 놓여진 돌의 모습까지 상상이 된다. 기막힌 은유의 표현이다. '-말'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을'의 준말로 보인다. '-능 마..

조각글쓰기 2022.05.04

회사에서 상호 존중이 어려운 이유

4월 초에 직장에서 '상호존중 문화 확립'을 위한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의 내용은 '우리 사이 상호 존중을 위한 거리는?' '직장 선후배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가장 듣기 싫은 말은?'이었다. 상호 존중 거리는 여러 사람이 1~2미터가 적당하다고 답했다.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역시나 '고생했다, 수고했다'였고, 듣기 싫은 말은 여러 가지가 많이 나왔다. 직장에서, 특히 상사에게 일상으로 듣는 말들이었다. '상사'도 권력이라고 권력 관계의 틀에서만 상호 존중을 바라봐야 하나. 긍정의 말 몇 마디를 하고, 거친 말을 근절하려 한다고 상호 존중 문화가 만들어지나. 다른 부분은 없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적어본다. 얼마 전 참조로 메일을 하나 받았다. 수신인은 출장 세차를 관리하는 직원인데, 출장 세차 ..

조각글쓰기 2022.04.30

줄서기라는 노동에 대해

회사 출근길은 지하철 1번 출구를 올라가면서 시작된다. 백화점 정문이 나오고 그 옆으로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요즘 유행하는 명품 구매대행 알바, 줄서기알바다. 오늘은 정문 옆 루이ㅇㅇ 쇼윈도부터 에르ㅇㅇ 쇼윈도를 넘어 백 미터는 됨직하다. 오늘은 어느 매장의 오픈런일까? 새벽을 지난 모습이어서 두툼한 겨울외투를 입고 발을 동동거린다. 침낭 속에 들어가 간이의자에 앉아 있기도 하고 자리를 깔고 누워 움직임이 없는 이들도 있다. 스마트폰을 보기도 하고 여럿이 있는 가운데 휴대용 컴퓨터를 보는 이도 있다. 2021년 여름쯤인가. 이 줄 서기는 눈에 띄었다. 그 이후로 수 십 차례 보았는데, 오늘은 천천히 바라보며 생각하게 된다. '이 줄 서기는 왜 내 눈을 끌고 바라보게 만드는 거지?' 지하철에서 줄을 ..

조각글쓰기 2022.04.09

도시 속 봄 말하기

"이게 꽃이야?" 하며 아쉬운 표정 짓지 말아 주세요. 대문호 괴테 옆에 서있는 나는 '산수유'입니다. 롯데월드타워&몰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어엿한 꽃이랍니다. 매년 이맘 때 우리 단지를 뒤덮는 벚꽃과 철쭉꽃은 탄성을 자아내지요. 오월이 되어 벚꽃과 철쭉꽃이 사라진다고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패랭이꽃, 노랑선씀바귀, 괭이밥, 지칭개, 봄망초, 억새풀과 띠가 아쉬움을 달래줄 거예요. 장미꽃이 필 무렵, 사촌뻘인 찔레꽃도 볼 수 있어요. 우리를 잡초라고 말하면 서글픕니다. 우리는 롯데월드타워&몰에 같이 살고 있으니, 한 번 찾아와 주면 어떨까요?

조각글쓰기 2022.04.08

어색한 자리

사장님과 식사시간이 잡혔다. 최근 '주니어보드'가 회사마다 인기다. 회사에서는 사장님과 5년 차 미만의 직원들이 새롭게 떠오르는 장소나 회사의 사업과 관련 있는 장소를 방문하는 행사를 자주 한다. 이런 행사를 통해 서로 얘기하며 통찰력을 키우고 젊은 직원들과 의견을 나누어 세대 간의 간격을 줄이고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다. '역멘토링'과 겸하여 진행하는 행사다. 팀장들과도 비슷한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었는지 '시니어보드'란 이름으로 사장님과의 행사를 갖게 됐다. 자리를 준비하는 팀장은 바쁘다. 비서나 경영지원팀장과 통화하고 문자하고 정신없다. 대기장소와 출발시간을 정하고, 이동경로와 수단을 상의하고, 팀장들에게 공유하고, 식사장소와 메뉴를 추천받고, 적당한지 자문을 구하고, 결정사항을 다시 알려주고, 후식..

조각글쓰기 2022.03.01

두 개의 첫 알바

알바가 전사지 기계 앞에 앉는다. 사무실이라고 하기에는 어둡다. 비어 있는 책상 몇 개, 기다란 소파가 중앙에 있고, 한쪽 벽면에는 옷가지를 차곡차곡 쌓아 넣은 비닐봉지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고 그 앞쪽으로는 교자상 만한 종이박스가 줄지어 입을 벌리고 있다. 종이박스마다 종로 2가, 이대, 신촌, 연신내, 동대문... 배송지가 적혀 있다. 사무실이라고 하기에는 의류 공장에 가깝다. 전사지 기계는 사무실 한쪽 구석에 작은 교자상 만한 크기로 놓여 있다. 무늬 없는 반팔티를 펼쳐 전사지 기계 위에 놓는다. 가슴 부위를 정중앙에 놓고 구김이 없도록 잘 펼친다. 전사지를 가슴 부분에 놓고 기계 윗부분 손잡이를 끌어당겨 전사지 위에 내리누른다. 시간이 조금 지나 알람이 울리면 기계 윗부분을 밀고 반팔 티를 옆으로 ..

조각글쓰기 202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