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에서 어미랑 오라비의 목소리를 들었을 텐데 아무 기척이 없다.
"아가."
야무네가 방문을 연다. 푸건은 멍청히 앉아 있었다. 며칠 몇 날을 울었을까, 눈이 부어서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오빠, 날 데리러 왔소?"
"가야지, 병 나으믄 도로 오더라 캐도."
딱쇠는 누이의 기막히게 된 모습을 보는 순간 멀기만 했던 생각이, 갑자기 등을 돌리고 달려드는 듯 오열한다.
"나는 안 갈 기요, 갈 것 같으믄 콱 고만 죽어부릴라요. 아무리 해도 죽을 긴데 부모 형제까지 못 살게는 못하요. 강서방 하고 함께 죽을 기요."
"이 철없는 것아, 그만 날 따라갔이믄....... 하, 하기사."
하다가 야무네는 눈물도 말라버렸는지 햇살이 비치는 방문을 바라본다. 이윽고 발소리가 들려왔다. 방문이 열렸다. 양 볼이 쑥 들어간 깡마른 늙은이가 들어온다.
"사돈, 볼 낯이 없십니다. 얼매나 놀랬습니까. 딱쇠야, 인사 안 하고 머하노."
딱쇠는 입은 봉한 채 절만 한 번 하고 옷자락을 걷으며 앉는다.
"기별 받고 오시는 깁니까?"
눈동자가 덮일 만큼 눈이 부은 며느리에겐 한 번도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예."
"집구석에 이런 일만 안 났어도 우리 입으로 데려가라 마라 하지는 않았일 기요만, 생떼 겉은 내 자석이 죽을 판인데 할 수 없는 일 아니겄소? 제 밥 찾아 묵기도 바쁜 형편에 말이오. 게다가 점도 치게 되고 굿도 하게 되고 집구석이 결딴날 판이오. 우리 집안에서는 구신이 덧들(건드릴) 일이 없소. 점괘에 납디다. 작은 아아 친정아부지가 나오더마요. 사람 하나 잘못 들어온 탓으로......"
"아무리 딸 준 죄인이라 카지마는 너무 안 하십니까."
딱쇠가 참다가 입을 열었다.
"너무하다니?"
"안 그렇십니까? 안 그렇다 말씸이오? 우리가 안 데리고 가겄다 하믄 우짤 깁니까? 내 동생이 가마 타고 집을 나갈 적에는 멀쩡했소. 병든 처녀 데리갔십디까. 벵이 나도 이 집에서 났고 벵들었다 해서 쫓아내는 법이 있소오? 칠거지악에 벵들믄 내쫓는다는 말이 있십디까? 하물메 데리가겄다고 왔는데, 없이 사는 처지라고 이렇기 업수이여기도 된다 그 말씸이오?"
"아이구 참, 나오는 꼬라지를 본께 딸 안 살릴 작정이구먼."
"살릴 생각이믄 데리가라 하지도 않을 기고요, 우리도 데리가서 굶겨 직이는 한이 있어도 막설할라요(끝장내겠소)."
"아아니, 세상에 엎드려 빌어도 성이 풀어질까 말까 하는데, 세상에 구신까지 짊어 지워서 보내놓고, 내 생떼 겉은 자석까지 잡아 묵을라 캄서, 어디다 대고 떼거지를 쓰는고!"
"사돈, 참으소. 철없는 것이 지 동생 생각만 하고."
"듣기 싫소! 당장 데리고 가소!"
"야! 데려가지 마라 캐도 데리고 갈라요! 마구간 겉은 방구석에 처박아놓고, 생사람도 벵나겄소! 어매, 나서소! 내 푸건이 업고 나갈 긴께."
"오빠!"
푸건이 방바닥에 엎드리며 통곡이다. 딱쇠는 통곡하는 푸건이를 안고 나와서 업으려 하는데,
"어매! 어, 어매요!"
버둥거린다.
"아가아, 강서방 벵이 나아야 안 하겄나? 아무 말 말고 가자."
아들 등에 딸을 떠밀어 올린다.
토지 10권 121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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