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는 니체의 '영원 회귀의 사상'을 빌어 세상사의 모순을 드러낸다. 이 모순은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으로 모든 모순 중에서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고 말한다. 쿤데라는 이에 앞서 '인생-이 책에서는 '한번'의 인생을 의미한다. 정확한 표현을 위해 '일회인생'이라고 하자- 또는 세상사'와 '영원한 회귀'를 비교하여 아래와 같이 설명하며 글을 시작한다.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일회인생은 그림자 같이 가볍고 무의미하다. 삶이 잔혹하고 아름답거나 혹은 찬란하다고 해도 세상 면모가 바뀌지 않는 것과 같다. 일회인생은 덧없는 것으로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자태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역사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 피투성이 세월조차도 그저 말뿐, 새털보다 가벼운 이론과 토론에 불과해서 누구에게도 겁을 주지 못한다.
영원한 회귀라는 사상은 무겁다. 이 사상은 우리가 알던 세상사를 다르게 보게 한다. 우리의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게 한다. 니체는 가장 무거운 짐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전쟁이 셀 수 없이 반복된다면 '그 전쟁은 우뚝 솟아올라 영속되는 한 덩어리로 변할 것이고 그 전쟁의 부조리는 치유될 수 없을 것'이다.
잠깐 이해되지 않는 것을 먼저 얘기하자면, 영원한 회귀로는 '치유될 수 없는 것'과 일회일생으로 '세상 면모가 바뀌지 않는 것'의 차이가 이해되지 않는다. 이것 아니면 저것의 이분법에 묶여 있어 납득되지 않는 것일까. 영원한 회귀나 일회일생이나 유사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혹, 이것이 쿤데라가 얘기하는 모순 아닐까. 확실히 냉소적이다.
이제, 세상사에 대해 질문한다. 무거움은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인가? 그리고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다시 의문을 먼저 얘기한다면 '(세상사는, 가벼움과 무거움은) 택하는 것일까?' 아니 우리는 그렇지 않음을 알고 있다. 대부분 우리가 택하지 못함을. 쿤데라는 그냥 세상사를 인식하는 자세, 마음가짐을 얘기하는 것일 수 있다.
쿤데라는 본론으로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한' 모순으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을 얘기한다. 그 하나는 세상사가 우리에게 나타났을 때 세상사가 덧없음을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세상사를 지내고 일회인생의 무게감을 느낄 때 '덧없음('정상참작'이라는 번역은 영 어색하다)'으로 인해 어떤 심판도 내리지 못하는 '도덕적 변태상황'에 놓이게 된다. 용서와 냉소 가운데 일회인생은 무거움에서 가벼움으로 전환한다. 또 하나는 삶의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무거움과 진실됨, 가벼움과 무의미함. 우리에게는 무거움과 가벼움의 절반의 선택권이 주어진다. 토마시와 테레자의 만남이 그렇고, 토마시의 서명 거부가 그렇고, 토마시를 만나기로 하는 테레자의 결심이 그렇고, 토마시의 애인이기로 맘먹는 사비나의 선택이 그렇고, 캄보디아로 가는 프란츠의 결심이 그렇다. 우리는 선택의 가운데 진실하면서도 때로 가벼운 인생을 살게 된다.
* 이 책은 제목이 한 몫한 듯하다.
"무겁고 지겹던 짐을 부려놓고도 뭔가 허전해서, 자위하듯이, 아니 질겅질겅 껌을 씹듯이, 참을 수 없는, 참을 수 없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되뇌이던 시절이 있었다-함정임."
내게도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제목만으로 '인간-존재'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만들었었다.
*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고 한다지. 한 사건에 대해 이 사람과 저 사람의 시각을 반복해서 서술하고, '카레닌'에 대한 서술까지. 건조한 문체가 흠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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