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간은 5시 20분에서 더 늦추어지지 않았다.
"그럼 5시 20분으로 가능한 다른 날짜는 없으실까요?"
전화 상대방은 5시 20분을 지키려는 의지가 확실했다. '어쩔 수 없이 반반차를 내야 하겠구나' '여기도 빈번한 연장근로는 어렵겠지-주민기록단 교육 시간은 저녁이었다-' 생각을 하며 시간을 정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약속한 날 근처에 공동연차가 있는 것이 생각이 나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는 부재중이었고 쪽지를 남기게 되었다. 그렇게 그렇게 인터뷰 날짜가 잡혔다.
주민기록단 교육을 처음 받으러 갔을 때 문화원 입구에 인터뷰 신청 서명지가 있었다. '원하시면 서명하시면 됩니다' 설명은 짧았다. '웬 인터뷰...' 아마도 교육을 신청하게 된 계기나 소감에 대한 인터뷰일거라는 불분명한 설명이었다. '인터뷰한 것을 유튜브에도 올리고 그럴 용도입니다' '웬 유튜브...' 별 관심이 생기지 않았고 눈길이 가지 않았다. 7회 차에 걸친 교육의 마지막 시간을 시작하며 직원이 인터뷰 서명지를 들고 한 명 한 명 의사를 묻고 있었다. '아 아무도 안 했나 보군, 신청 인원이 적은 건가?', 직원은 어려운 인터뷰가 아니라고 신청을 독려했고 OO은 나에게 넘기며 사인하라고 재촉했고 나는 사인을 하게 됐다.
사전 질문지와 대답 요령을 적은 메일을 보내 왔다. 휴대폰에 저장만 해 놓고 질문 몇 개 정도 답변을 써놓은 채 시간이 지나갔다. 당일 버스를 타고 가며 나머지 답변을 써보고 입으로 꺼내보고 수정도 조금 하고 하며 문화원으로 향했다. '외울 것까지는 아니잖아' 문화원으로 가는 언덕길을 오르고 숨을 고른 후 문화원 문을 열었다. 문은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안이 훤하게 보였다. 직원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앳된 모습들이었다. 개인정보 동의서, 자료 활용 동의서를 작성하고 인터뷰 자리에 앉았다. 철제 접이식 의자였는데 등받이에 등을 붙이면 상체가 약간 뒤로 젖혀지는 느낌이어서 불편했다. 엉덩이를 뒤로 밀고 앉았다. 왼편 가까이, 오른편 조금 멀리 사각 조명이 켜졌고 전면에 카메라가 놓였다. 직원이 줄마이크를 달아 주었고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직원 한명의 큐 사인에 다른 직원은 질문을 하였고 나는 준비된 답변을 했다. 세네 가지 질문과 답변을 해보고 나서 직원은 연습이라며 이제 (녹음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준비한 답변이 생각이 나지 않아 한두 차례 정도 끊겼고 '안녕하세요'로 시작하는 인사말을 넣으면 좋겠다는 둥 '고 부분은 조금 길게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하며 답변의 수정을 유도했다. 같은 질문임에도 답변할 때마다 입에서 흘러나오는 문장이 달랐다.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계속 머리를 흘러 다녔다.
"조금 아쉽다거나 답변을 더 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으실까요?"
아쉬운 부분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고 '다시 한다고 해서 나아질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무리를 요청했다. 인터뷰는 그렇게 끝났고 한 달쯤 뒤에 영상을 보내줄 거라는 말을 들었다. 문화원을 나서 몇 발자국을 내디뎠을 때 직원이 뛰어나왔다. 내가 줄마이크를 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사인 하나를 안 한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직원이 '이것은 영상 보시고 영상이 괜찮다고 오케이 하는 동의서예요, 그때 하시면 됩니다'해서 안 했지만. 도리어 나는 그냥 한 번에 다 해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인 때문에 오는 것은 번거로울 터였다. 메일로 주고받는 생각도 못했다니! 문화원을 내려오며 '영상을 보게 되면 사인을 안 하게 될 것 같은데...' 안도인지 미안함인지 나는 한숨을 쉬고 있었다.
아래는 인터뷰 전 써본 질문과 답변이다.
1. 자기 소개
성북구 OO동에 살고 있는 OOO입니다.
2. 주민기록단에 참여(신청)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평상시에 많지는 않지만 우리말이나 우리말 이름에 조금 관심이 있었습니다. 자연스레 지역 이름과 유래에 대해서도 조금 알게 되었는데 주민기록단이 그런 관심사에 맞아 참여하게 됐습니다.
3. 주민기록단 교육에서 무엇을 배웠나요?
7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주민기록단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 그리고 2차례는 주로 휴대폰을 이용한 사진촬영에 대해 기초 수준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나머지는 구술사에 대한 내용으로 인터뷰와 구술 채록 방법을 배웠습니다.
4. 주민기록단을 하면서 얻은 새로운 지식이나 경험이 있다면?
구술사 부분이 제일 생각이 납니다. 그중에서 구술 과정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웠습니다. 구술자 선정, 질문지 작성, 라포 형성, 구체적인 구술인터뷰 진행방법이나 진행 시 주의사항 등 이런 내용은 처음 접했고 재미있었습니다.
5. 주민기록단 구술(혹은 교육) 활동 중 인상 깊었던 일이 있다면?
구술자에 대한 인터뷰일 겁니다. 낯선 상황에서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 자체가 좋았습니다. 개개인으로서의 한 사람의 생애에 대해 한 가지 한 가지 들어 보는 시간은 매우 신선했습니다.
6. 주민기록단, 이런 분께 추천드린다.
뭔가 재미를 찾고 계신 분들? 취미라기보다 특별활동을 원하시는 분들께 좋을 것 같습니다(대안 답. 사회가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그래서 정신없잖아요. 잠깐의 쉼을 갖고 싶은 사람에게 유익한 시간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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