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네 4

20 임이네와 임이, 그 어미에 그 딸

임이는 방문을 닫아주고 마루에 걸터앉은 월선의 뒷모습을, 그의 주변을 유심히 쳐다본다. 뭐 가져온 거나 없는지 살피는 눈초리다. "아이구 내사 마, 머가 먼지 모리겄네. 간도댁 엄마요." "와." "봉순이는 부자한테 시집갔는가 배요? 주산이(비단)를 감고 찬물에는 손도 안 넣는 팔자 겉이 뵈니께." "......." "사램이 심사가 따로 있소? 내 팔자 생각한께 천양지간이고, 부모 없는 봉순이도 팔자가 저리 쭉 늘어졌는데 나는 와 이렇겄소? 세상에 촌놈도 그런 촌놈은 없일 기고 살림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군식구라고 아무 데나 치았인께. 야속하요." "씰데없는 소리." 부엌에서 달가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임이는 사냥개처럼 그 소리에 민감하다. 신발을 끌고 부엌으로 급히 간다. "어매 멉니까?" "머기는..

8 임이네의 출산

방 안에서 임이네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녁이 좀 들어와야겄소." "내가?" "그라믄 우짤 기요? 이 차중에 아무도 없이 우찌 아일 낳을기요?" "내, 내가." "그, 그라믄 우짤 기요? 누구 자식인데 이녁이 그러요!" 화내는 소리에 용이는 더듬듯 마루를 올라선다. 방문을 연다. 문바람에 등잔불이 흔들렸다. 벽을 짊어지고 앉은 임이네는 무서운 눈으로 용이를 노려본다. 머리를 벽에 부딪으며 임이네는 소리를 질렀다. 진통이 오는 모양이다. "아이구우, 어매! 나 살리주소!" 두 손을 쳐들고 허공을 잡는데 이빨과 이빨이 부딪는 소리가 들렸다. 눈알이 튀어나올 듯, 이마에서 두 볼에서 구슬땀이 솟아나온다. 임이네는 앞으로 넘어져 오며 두 팔로 용이 정강이를 안는다. 여자의 팔은 쇳덩이같이 단단했다. 두 팔은 용..

5 용이네 제사

제삿날 밤, 내외는 목욕재계하고 제상을 차렸다. 한지를 깐 제상에 괸 제찬은 조촐했다. 지방을 모셔놓고 의관을 차려입은 용이 분향을 하고 재배한 뒤 자리에 꿇어앉았다. 소복한 강청댁이 술을 따라 내미는 잔을 두 손으로 받은 용이는 모사에 세 번 따르고 술잔을 강청댁에게 넘긴다. 강청댁이 술잔을 제상 위에 올려놓고 정저 하는 동안 용이 다시 재배한다. 축문을 읽고 강청댁이 두 번째 잔을 올리고 종헌한 뒤 첨작하고 나서 강청댁은 메 그릇의 뚜껑을 열었다. 메에다 수저를 꽂는다. 용이와 강청댁은 제상 밑에 오랫동안 엎드려 있었다. 강청댁의 작은 어깨가 물결쳤다. 소리를 내지는 않았으나 전신으로 울고 있었다. 제상에는 촛불이 흔들리고 있었다. 지방과 축문을 불사르고 제수를 물릴 것도 잊은 두 내외는 양켠으로 갈..

2 마을 아낙들의 말 맛

두만네 집에 들어섰을 때 우리 안의 돼지가 코를 불었다. 우우-짖으며 개가 쫓아 나왔다. "복실아, 나다, 나아." 개를 쫓고 한 손으로 마룻바닥을 짚으며 마루에 올라간 강청댁, "일이 우찌 됐는고 모르겄네, 성님?" 방문이 안에서 털거덕 열렸다. 등잔불 아래 아낙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두만네가 얼굴을 내밀었다. "어서 오니라, 동생아." "할 일 없이 바빠서...... 일이 끝났소?" 방 안으로 들어간 강청댁이 방문을 닫았다. 등잔불이 흔들리고 아낙들의 얼굴도 흔들린다. "일찍이 오네." "꼭두새벽에 오니라고 욕본다." "새벽달 보자고 초저녁부터 오나." 한마디씩 핀잔이 날아왔다. 두만네 시어머니의 수의 짓는 날이었던 것이다. 일은 다 끝난 모양으로 아낙들은 모두 입을 모으고 앉아 있다. 강청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