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이십 년 만에, 평사리의 추석은 풍성하였다. 올벼를 베었을 뿐 논에는 황금물결이 이랑을 이루고 있었다. 평작은 넘는 농사여서 떡쌀을 담그는 마을 아낙들의 손길은 떨리지 않았고, 옛 지주요 오늘날의 지주인 최서희가 모처럼의 행차 선물인 듯 적잖은 전곡을 풀었으며 밤에는 오광대까지 부른다는 얘기였다. 홍이는 추석놀이를 위해 이틀 동안 아비에게 장고 치는 법을 배우고 또 연습했다. 차례 성묘가 끝날 무렵, 반공중에서 서편으로 해가 약간 기울 무렵 타작마당에 징이 울리면서 놀이는 시작되었다. 놀이꾼들 속에서 용이는 장고를 짊어졌고, 봉기와 성묘차 온 영팔이도 고깔을 쓰고 나섰다. 1903년, 보리 흉년으로 거리마다 아사자가 굴러 있던 비참했던 그해, 마누라를 굶겨 죽이고 그 자신도 실성하여 걸식하던 서금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