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란 도대체 어떻게 써야 하는가. 나는 전혀 모르겠다. 옛날에 써놓았던 것들은 모두 태워버렸다. 모두 남의 흉내가 아니면 내 겉멋 들린 관념의 유희에 불과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야기만으로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언어와의 치열한 투쟁 끝에 얻어낸 자기만의 실로써 자기만의 무늬를 놓아 비단을 짜고 그것을 정교하게 바느질해서 인간에게 입혀놓았을 때, 반드시 그 인간이 어떤 의미로든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나 기구한 운명 따위야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 이상의 소설을 쓰고 싶었다.
한 줄의 시, 한 악장의 심포니, 또는 한 폭의 그림따위들은 결단코 설명되어 지거나 해석되어서는 안 되며 다만 느끼어지는 것이라고 나는 언제나 고집하며 살아왔었다. 도대체 시를 이해하려 든다는 것부터가 무모하다. 시가 감상되는 것이라는 기초적 상식을 버리고서는 도저히 시에 근접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소설을 쓸 때 언제나 그것을 염두에 둔다. 따라서 내 소설 또한 감상되어지기를 바라며 결코 설명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나는 되도록이면 언어 자체를 생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추상이 아니라 구상이다. 나는 소설이 단순히 스토리 때문에 읽히워지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것은 언어의 동작들이 가지는 아름다움 때문에 읽히워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언어의 동작이라니, 미친놈이로군, 하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분들께는 더 이상 말해드릴 방법이 없다. 그분들은 이미 그분들의 의식 속에서 관념이라는 덮개로 언어를 뒤덮어 질식시켜 버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언제나 언어는 초자연적 본체로 물체에 붙어 그것을 보살피는 힘, 즉 철학에서 말하는 정령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게 있어 언어는 또 자연 그 자체이다. 바람이 불면 흔들린다. 햇빛을 받으면 반짝거리고, 탁하고 습한 곳에서는 썩기도 한다. 그것은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무척 다루기 힘든 대상이다. 때로는 흐느끼고 때로는 분노한다.
그러나 견딜 수 없는 것은 밤을 새워 언어를 건져올리다가 마침내 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할 때다.
나는 되도록이면 나의 글들이 지금까지 말해온 그런 언어의 정령성에 의해 쓰여진 것이기를 빈다. 그러나 언제나 실패였다는 생각이다.
<들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