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17조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인간의 삶에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섞여 있다. 어떤 인간이든 개인으로 탄생하여 존재하고 모든 인간은 사적 존재로 출발한다. 그렇지만 평범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사적 존재이자 동시에 공적 존재로서 의미를 지닌다. 어떤 인간도 혼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일차적 목표는 개인의 행복이다. 절대 이타적 인간조차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결국은 자신의 행복을 찾는다. 그러면서 인간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기여한다. 공동체는 자신과 분리된 다른 환경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배경이다. 공동체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면 개인의 행복이 더 커지고, 거기에 고무되어 개인은 다시 공동체를 위해서 노력한다. 그렇게 개인과 사회는 상호의존적 희망을 품고 함께 살아간다.
인간을 위해서든 사회를 위해서든 혹은 양자 모두를 위해서든, 인간의 사적 영역에서 출발한 동력은 공적 영역으로 확산된다. 따라서 어떤 경우든 개인의 사적 영역이 보호되어야 그다음을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헌법은 모든 국민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한다. 이 조항에 주거의 자유와 통신의 자유를 더하여 흔히 프라이버시권이라고 한다.
프라이버시권이란 미국에서 혼자 있을 권리라는 개념에서 시작된 것이다. 프라이버시는 대표적인 사적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한다. 사생활의 자유란 자신의 방식대로 생활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개성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을 권리가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한다. 물론 모든 사람의 모든 사생활이 비밀에 부쳐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형적으로 사적 영역에 속하는 내용은 철저히 비밀이 보장되어야 한다.
의심의 여지없이 사적 영역에 속하는 것 중 하나는 일기다. 쓴 사람이 원하지 않을 경우 일기는 결코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 일기는 범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도 없다. 아예 압수가 허용되지 않는다. 일기에 범행을 자백하는 내용이 있다 하더라도, 그 일기를 압수하거나 증거로 제시하는 행위는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헌법이 말하는 사생활의 비밀이란 것이 적어도 그 정도는 되어야 시민으로서는 기본권을 보장받는다고 느낄 것이다.
물론 절대적 권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일기보다 더 은밀한 사적 영역에 속하는 사항이라도, 그보다 큰 공적 이익을 위해서 제한될 수 있다. 사회적으로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테러의 예방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더라도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사생활의 자유는 대체로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의 결정권을 자기가 갖는다는 말이다. 자신의 행동은 물론 정보에 대한 자기 결정권과 국가권력은 자주 충돌한다. 국가권력은 개인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수집해 가지고 있으려 한다. 반면 개인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국가기관이 자신의 정보를 관리하는 일을 불쾌하게 여긴다. 자신에게 이익이 될 때는 정보 이용을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그렇지 않을 땐 거부감을 나타낸다.
국가는 맹목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개인의 정보 수집을 스스로 억제하거나 절제하여 이용하는 태도에 익숙하지 못하다. 따라서 시민 개개인은 국가권력에 대해 항상적 경고를 해야 하는 임무를 떠안아야 한다.
종래의 주민등록증을 전자주민카드로 바꾸기 위해 사람들은 열 손가락 지문 날인을 해야 했다. 인권단체가 중심이 되어 일부 시민들은 ‘지문 날인 거부 운동’을 펼쳤다. 하지만 종국에는 모든 사람이 전자주민카드를 발급받지 않을 수 없었다. 열 손가락의 지문 제공으로 인한 심각하고 구체적인 피해 사례도 지금까지는 보고된 바가 없다. 그렇다면 지문 날인 거부 운동은 잘못 판단한 행동이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적어도 속성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권력에 대한 경고로서의 효과는 컸다. 필연적인 과정이고 불가피한 제도라 할지라도, 개인 정보에 대하여 국가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중요하다. 하지만 사생활이나 프라이버시를 말할 겨를조차 없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한구석에 존재하고 있다. 사생활이란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 개인적 공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자기만을 위한 공간이라곤 한 뼘도 없는 경제적 약자들에게 사생활이나 프라이버시는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는 정책에 그런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포함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는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
< 지금 다시, 헌법 >에서 발췌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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