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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불평등 다시 보기

밭알이 2023. 11. 24. 12:00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적, 정치적, 기술적 전환이 이루어지며 유럽, 미국, 그 밖의 몇몇 곳에서 불평등이 감소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로는 최상위 부자들과 그 외 계층 사이의 격차가 해를 거듭할수록 크게 벌어졌다. 오늘날 전 세계 부의 총량에서 세계 인구 절반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파이의 고작 2퍼센트에 불과하고, 그 외 4분의 3이 넘는 비율(76%)은 상위 10퍼센트가 차지하고 있다.
  불평등에 관해 정치적으로 수용할 만한 해법으로 파이를 더 크게 늘리면 되지 않나 하는 얘기가 있다. 경제가 성장하면 불평등과 관련한 문제들이 저절로 처리된다는 주장이다. 저소득 국가에서는 이 해법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고소득 국가에서는 경제성장이 더 많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만큼의 건강, 웰빙 혹은 행복 증진이 뒤따르지 않는다. 대규모로 금융화, 세계화된 지금의 경제 시스템에서는 파이가 늘어날수록 이미 가장 많은 몫을 차지한 이들이 전보다 훨씬 많은 몫을 낚아채기 때문이다. 불평등이 크면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인센티브로 작용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관련 증거를 살펴보면 극심한 불평등은 사회 속에서 파괴적인 힘으로 작용할 뿐임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극심한 불평등은 권력이 초부유층과 가장 가치가 높은 회사들의 손에 점점 더 집중된다는 것을 뜻한다. 2008년 세계 금융 시스템의 실패 사례를 보자. 당시 각국 정부들은 붕괴를 막고자 수조 달러를 투입해 가며 무너져가는 은행들을 살리려고 애썼다. 전 세계 시민들은 가혹한 긴축 조치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은행들은 엉망인 경영 상태에서 명맥만을 유지하면서도 더 많은 이익을 추구했고, 은행의 소유주들도 제자리를 지켰다. 이 과정에서 포퓰리즘 지도자들이 일어나 잘못된 정보를 조장하며 사회를 분열시켰다.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기 침체의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노동자로 인해 장기적으로 추진해 온 탄소 배출 감소 정책이 힘을 잃었다. 불평등은 바람직한 정책을 재앙적인 실패에 빠지게 만들 수 있다.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더 높은 지위에 대한 욕망이 극도의 물질주의와 탄소를 발생시키는 무절제한 소비를 부추긴다. 현재 전 세계 상위 10퍼센트가 거의 절반(48%)의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상위 1퍼센트는 지구상의 모든 화석연료 배출의 15퍼센트에 책임이 있다. 불평등이 심한 사회의 구성원들은 타인의 시선을 걱정하며, 명품과 고가의 차를 비롯해 과시용 제품들에 매달릴 확률이 더 높다.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부채와 파산이 더 만연하다. 자연자원의 과도한 소비는 웰빙에도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식품의 과잉 섭취는 건강에 해롭고, 정신건강 문제도 자원소비가 높은 나라에 집중된다. 엘리트 계층의 소비 대부분은 나머지 사회 구성원에게 지나친 비용을 떠 안기는데, 이 비용은 소비된 물품의 시장가격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경제학자 호세 가브리엘 팔마는 상위 10퍼센트와 하위 40퍼센트에게 돌아가는 소득과 부의 정도를 비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이 꽤 타당한 이유는 국가나 시대와 관계없이 국민 총소득의 절반가량은 중위 50퍼센트가 차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말 중요한 것은 양극단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아내는 것이다. 팔마비율은 상위 10퍼센트의 소득 점유율을 하위 40퍼센트의 소득 점유율로 나눈 값이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팔마 비율은 약 1.0이다. 즉, 상위 10퍼센트와 하위 40퍼센트가 점유하는 총소득이 거의 같다는 뜻이다. 영국은 2, 미국은 3, 남아프리카공화국은 7에 해당한다. 1.0의 팔마비율이 지속 가능한 수준의 불평등이라고 볼 수 있다. 오랜 기간을 놓고 봤을 때, 1.0 비율은 탄탄한 사회 결속력을 유지하며 대다수 사람이 매우 높은 수준의 웰빙을 누리도록 뒷받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평등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치러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결과일까? 불평등은 자본주의 사회의 '자연스러운' 질서일까? 진실을 뚜렷이 드러내보자. 극심한 불평등은 심각한 파괴력을 지녔고 이 파괴력은 부유한 사람들조차 피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평등은 사회를 퇴보시키고 분열과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상황을 불러오고 민주주의를 훼손한다. 불평등을 지속가능한 수준까지 낮추지 못하면 불행은 기후변화를 등에 업고 모두에게 닥칠 것이다. 가난한 자든 부자든.


                                                         < 모두를 위한 지구 >에서 발췌 요약

 

* 우리나라의 팔마비율은 얼마일까? 2021년에 3.9였다. 2015년에도 3.9였고 2018년에 3.6으로 떨어졌지만 다시 상승했다. 관련기사는 코로나19 기간에 저소득층에 경제적 타격이 집중되고 초고소득층의 소득 비중은 늘어나면서 악화되었다고 분석한다. 아니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계속하여 '지속가능하기 어려운 수준'의 불평등이 심한 국가다. 

https://www.khan.co.kr/economy/economy-general/article/202302262200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