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구성하는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한계를 초과했고, 그것은 인간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끼쳤다. 이후 치열한 노력 끝에 그 한계를 다시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되돌리는 데 거의 성공한 듯하다. 바로, 성층권에 존재하는 오존층에 관한 이야기다.
1928년에 처음 개발된 CFCs는 지금까지 인간이 합성한 화학 물질 가운데 가장 유용한 화합물 중 하나다. 화학적으로 안정되어 생물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불에 타지 않고 다른 물질을 부식시키지도 않는다. 절연체로서 성능이 뛰어나 컵이나 용기, 발포성 플라스틱 재료로 널리 쓰인다. 온도를 낮출 수 있어-프레온이라는 상표로 널리 알려진- 냉장고와 에어컨의 냉각제로 사용된다.
1950년에서 1975년까지 전 세계 CFCs는 해마다 11퍼센트 넘게 늘어났다.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해마다 백만 톤씩 생산되었다. 북미와 유럽, 러시아, 아시아에 있는 수많은 화학 회사들에게 이 물질은 중요한 수입의 원천이었다. 수천 개의 기업들은 이 물질을 생산 공정에 꼭 필요한 필수 투입물로 생각했다.
지구는 6마일에서 20마일의 '오존층'이 감싸고 있는데, 오존은 성층권 상층에서 햇빛과 일반 산소가 반응해서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오존층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오존층을 구성하는 분자 가운데 10만 분의 1이 오존이다. 오존층은 섬세한 거미줄처럼 얇은 막을 형성하며 생명체 유지에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존층은 태양에서 발사하는 중파장 자외선(UVB)을 대부분 흡수한다. UVB 방사선은 매우 유해해서 암을 유발하고 면역력을 떨어뜨리며 망막을 손상시켜 백내장의 원인이 된다. 식물의 광합성 작용을 감소시켜 농작물의 수확량에도 영향을 준다. 생태계를 교란시켜 해충이나 기생충이 과도하게 늘어날 수도 있다.
1974년에 CFCs가 성층권에 도달해서 염소 원자를 방출하면서 오존층을 파괴한다고 주장하는 복수의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이 논문들은 모두 인간의 CFCs 사용이 극도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예견했다.
자외선은 CFCs에서 유리염소(Cl)를 떼어내어 CFCs를 파괴한다. 유리염소는 오존과 작용해서 산소(O2)와 산화염소(ClO)를 만들고 산화염소는 산소(O)와 작용해서 산소 분자(O2)와 유리염소를 다시 만든다. 유리염소는 다시 또 다른 오존 분자를 산소로 바꾸고 유리염소를 또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 유리염소 원자 하나가 활동을 중지할 때까지 평균 10만 개의 오존 분자가 파괴된다.
한계 초과 현상이 나타나기까지는 도중에 지체 현상이 있기 마련이다. 성층권에 도달한 유리염소가 오존 파괴를 멈출 때까지는 여러 해가 걸린다. 산업체가 CFCs를 만들어 성층권에 도달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대기의 흐름에 따라 순환하다가 마침내 성층권 상층부로 이동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린다. 다행히도 과학적 합의를 이루는 과정에는 지체가 크지 않았다. 여러 가지 정치적 요인들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논문 저자들은 일반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매우 열성적이었고, 잘 조직된 환경 운동 덕분으로 곧바로 행동에 돌입해 미국 사회에 충격을 줄 수 있었다. 미국은 1978년에 분무기에 CFCs 사용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켜 CFCs 생산을 크게 줄이는데 기여했지만 그 밖의 많은 나라, 특히 전기 산업과 같은 다른 분야에서 CFCs의 사용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1984년 10월, 영구 남극 조사단 소속 과학자들은 남극 대륙의 핼리만에서 자신들이 조사하는 지역 상공의 성층권에 있는 오존이 40퍼센트 감소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10월에 측정한 오존의 양은 약 10년 동안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었다. 1985년 5월, 남반구 상공에 '오존층 구멍'이 생겼다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그 소식은 전 세계 과학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것은 인류가 이미 지구의 한계를 초과했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인간은 이미 자신들을 보호하는 방패 구실을 하는 오존층을 파괴하는 중이었다. 오존층에 뚫린 구멍은 엄청나게 커서 미국 대륙의 크기만 했다. 그리고 그 구멍은 해마다 점점 커지고 깊어졌다.
남극에서 발생하는 오존이 파괴된 공기는 대기권을 떠도는 기체들과 서로 섞이면서 지구 전체로 퍼져나가 성층권의 오존 농도를 점점 감소시킨다. CFCs와 Cl의 대기권 잔류 수명은 길어 오존층 파괴는 적어도 100년은 계속될 것이다. 인류가 이미 한계를 넘어간 이상 CFCs 방출을 당장 멈춘다고 하더라도 오존층 파괴는 오랫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다.
전 세계는 이미 여러 번 국제회의를 통해 CFCs 생산을 제한하자고 했지만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오존층 구멍이 발견되기 두 달 전에 열린 비엔나 회의에서 참가국들은 자기 만족식의 선언을 도출하는데 그쳤다. 일정표도 만들어지지 않았고 구속력 있는 합의안도 없었다. 기업들은 CFCs를 대체할 물질을 찾는 일을 방기 했다. 사람들은 오존층 구멍을 발견하고 나서 3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이 문제를 CFCs와 연관 짓기 시작했다.
남극 대륙 상공에 뚫린 구멍은 확실히 심리적 효과가 컸다. 아직 분명한 증거는 없어도 CFCs가 괴상한 짓을 하고 있다는 과학적 심증은 충분했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전 세계 국가들을 정치적 협상 자리로 이끌어 내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유엔환경계획은 중립적 회의 자리를 마련하고 중재자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협상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각국 정부들은 문제를 분명하게 깨닫기도 전에, 인간의 건강과 경제에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알기도 전에 전 세계적인 환경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다. CFCs를 생산하는 주요 국가들이 CFCs 사용을 축소하는 조치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유엔환경계획은 국제사회에 계속해서 압력을 가했다. 유럽과 미국의 환경 단체들이 각국 정부를 압박하고 과학자들은 언론과 의회, 일반인을 대상으로 교육과 홍보 활동을 전개했다. 마침내 각 국 정부는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게 1987년 몬트리올에서 오존층을 파괴하는 물질에 관한 의정서에 서명했다. 가장 많이 쓰는 CFCs 사섯 종의 세계 생산량을 1986년 수준으로 동결하기로 명문화했다. 1993년에 20퍼센트, 1998년 30퍼센트로 줄이는 '20-30 동결'에 CFCs를 생산하는 주요 국가들이 모두 서명했다.
몬트리올 의정서는 매우 파격적이고 역사적인 협정이었지만 CFCs 감축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이 금방 명백해졌다. CFCs의 생산을 줄이더라도 이미 생산되었지만 아직 방출되지 않았거나 방출되기는 했지만 아직 성층권에 도달하지 않은 엄청난 양의 CFCs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유리염소의 농도를 높일 것이 자명했다. 협정이 그다지 힘을 쓰지 못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대다수 공업국들이 서명에 동참하지 않았던 것이다. 중국은 수백만 가구에 냉장고를 공급하려 하였고 러시아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협정 내용보다 더 천천히 CFCs를 감축하려 했다. CFCs를 생산하는 대다수 기업들은 적어도 여전히 자신들의 시장 몫은 유지하고 싶어 했다.
몬트리올 의정서에 서명한 지 1년도 안 되어 오존층 파괴가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는 '결정적 증거'가 세상에 발표되었다. 그러자 뒤퐁이 완전히 CFCs 제조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1989년, 미국과 유럽연합은 2000년까지 가장 많이 사용하는 CFCs 다섯 종의 생산을 모두 종료하겠다고 선포했다. 다시 유엔환경계획이 주도하는 후속협상을 진행했다. 1990년 런던에서 92개국 정부들이 만나 2000년까지 모든 CFCs 생산을 전면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여러 공업국들은 CFCs의 대체 기술을 위한 국제 기금 마련을 요구했다. 미국의 거부로 협정이 무산될 지경이었으나 막판에 기금 설립에 서명하며 합의가 도출되었다.
1991년 봄, 인공위성이 북반구 상공을 새로 관측한 바에 따르면 오존층 파괴가 예상했던 것보다 2배나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북아메리카, 유럽, 중앙아시아의 인구 거주 지역 상공에서 방사선이 사람과 농작물에 모두 피해를 줄수 있는 여름철에도 오존층 파괴가 계속되고 있음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이런 우려스러운 소식이 들리자 독일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런던 협정보다 훨씬 더 빨리 CFCs와 할론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멕시코와 같은 일부 개발도상국들은 자신들에게 보장된 10년 유예 기간을 포기하고 선진국들과 똑같은 감축 일정에 동참했다.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다른 나라들도 서서히 그 대열에 동참했다. 모든 국가들이 2010년에 CFCs 생산을 전면 중단하기로 하였다. 1992년 코펜하겐에서는 한층 더 진전시키기로 합의했다. 1994년에 할론, 1996년에 모든 CFCs 신규 생산 중단, 토양 소독제 브롬화메틸의 방출을 제한하는 '강화 조치'였다. 1996년, 전 세계 157개 나라가 이 강력한 협정에 동참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이런 협정과정이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오존층 파괴는 계속 일어날 것이다. 오존층 파괴가 가장 정점에 이르는 시간-1995년에서 2010년까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기에는 너무 시기가 늦었다. 이제 필요한 일은 의정서 일정을 계획대로 수행하고 강화하는 것이었다. 2002년, 전 세계 CFCs 생산은 1988년 정점의 연간 100만 톤 이상에서 10만 톤 미만으로 감소했다. 기업들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비용과 혼란으로 생산 중단에 적응했다. 최종 손실 규모는 4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었다.
1995년과 1996년 북극 상공의 오존 농도는 기록적으로 감소했는데 잠시 동안이었지만 시베리아 상공의 경우 45퍼센트나 떨어졌다. 북반구 중위도 오존층은 1998년 겨울과 봄에 평균 6~7퍼센트 정도 파괴되었다. 남극 상공의 오존층 구멍은 계속 커지고 깊어졌다. 오존층은 21세기 처음 20년동안 가장 취약한 상태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협정이 지속적으로 지켜지고 불법적인 CFCs 제조가 중단되고 화산폭발과 같은 자연 재해가 없다면 2050년쯤 되었을 때 오존층은 거의 원상태로 회복될 것이다. 오존층 문제를 해결하는데 25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지만 한계 초과 문제를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는 분명해졌다.
< 성장의 한계 >에서 발췌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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