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공부/인권 공부+

기후위기로 침해되는 인권

밭알이 2023. 11. 6. 12:00

  생명권
  생명권은 모든 인권의 제일 앞자리에 있는 권리다.
  초대형 태풍과 같은 '급격한 개시' 사건은 사람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2019년 태풍 미탁으로 12명이 사망하고 3명이 실종되었다. 극한 기상이변은 인프라가 취약한 개도국에서 수천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킬 때도 있다. 폭염이나 가뭄 또는 매개체 감염질환과 같은 '완만한 개시' 사건으로도 사람들이 생명을 잃는다. 2011~2019년에 폭염 사망자는 134명이었다. 반면 다른 조사에 따르면 정부 발표보다 최대 20배 이상이 사망했다.
  전 세계적으로 2030년까지 '완만한 개시' 사건에 의한 사망자가 매년 70만 명을 상회할 것으로 추산된다. 또 2030~2050년에 매년 영양실조, 말라리아, 설사 등으로 25만 명 이상이 초과 사망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변화가 사회경제적 격차에 따라 취약계층에게 더 큰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지만 더운 날씨에 의한 자살은 계층과 무관하게 모든 사람이 악영향을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생계권
  '세계인권선언' 25조는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리고 생계를 유지할 권리를 규정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가 있다. (...)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형편이 되어 생계가 곤란해진 모든 사람은 사회나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기후변화는 인적, 사회적, 자연적, 물리적, 경제적 자산에 악영향을 주어 사람들의 생계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기후변화가 생계에 직접적인 양항을 미치는 대표적인 분야로 농업, 수산업, 계절성 경제활동을 들 수 있다.
  농업은 기후변화에 특히 민감하고 농민의 피해는 즉각적이다. 기온이 오르면 쌀 불임률이 높아지면서 15~35퍼센트까지 생산이 감소한다. 가축은 폭염으로 면역력이 떨어지고 스트레스가 증가하면 번식, 증체량, 우유량이 줄어든다. 가축 질병 및 전염병의 확률도 높아진다. 어업 역시 큰 타격을 받는다. 한반도 연근해의 해수 온도는 전 세계 평균보다 더 빨리 올라가고 있다. 수산자원이 변하면서 찬물 어종이 대폭 감소했다. 해파리와 같은 해적생물은 급증하고 있고 백화현상이라 불리는 '갯녹음' 현상으로 석회조류가 대량으로 번식해서 막대한 피해를 준다.

  건강권
  급격한 개시 사건(기상이변, 산불, 태풍, 전염병 등)이든 완만한 개시 사건(폭염, 미세먼지 등)이든 기후위기가 인간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넓고도 깊다. 기후위기로 인한 '기후민감성 질환'은 너무 다양하다. 계절성 질환, 말라리아와 뎅기열 같은 매개체 감염질환, 비브리오, 설사, 심장질환, 폐질환, 신장질환, 진드기에 의한 라임병 등 온갖 종류의 건강 문제를 야기한다.
  정신 건강도 기후위기의 영향을 받는데, 급격한 개시 사건을, 겪은 후에는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과 비슷한 정신보건 문제가 나타난다. 기후위기에 대한 염려 때문에 불안, 초조, 우울, 강박, 답답함, 불면 등을 호소하는 '생태 불안장애'도 늘어나는 추세다. 재난 사태에 대한 불만, 분노, 무기력, 불공정감, 울분, 심하면 공황발작이 나타나기도 한다.
  감염병 역시 지구화와 기후변화로 더욱 확산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를 위시해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감염병이 기후변화의 맥락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오랫동안 경고해 왔다. 전 세계에 역사적인 규모의 피해를 줄 수 있는 재난이 미래의 재난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그 속에 들어가 있는 위기임을 알 수 있다.
  대기오염과 미세먼지도 기후변화 및 기류 변화와 연관된다. 공기오염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매년 700만~900만 명의 조기 사망자가 발생한다. 한국 국민 중 55퍼센트 이상이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한 수준의 2배가 넘는 초미세먼지에 노출되어 있다. 이는 OECD 국가 중 최악의 수준이다.

  자기결정권
  모든 인민 집단들이 자기 집단의 삶의 방식, 정치적 의사, 경제*사회*문화적 발전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유엔 '자유권규약'과 '사회권규약'에 공통적으로 나와 있다. 이미 토착민들은 기후위기로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공동체로서 정체성을 지키며 살 수 없는 형편이 된 경우가 많다. 작은 섬나라 국민들, 저개발국, 저지대 거주 주민 중 많은 이들이 해수면 상승과 가뭄 등으로 이산민이 되었고 정치적 영토주권이 소멸될 운명 앞에 놓여 있기도 하다.

  발전권
  '유엔 헌장'은 세계 각국이 "경제적*사회적 진보와 발전의 조건"을 증진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유엔은 1945년 창설 때부터 전 인류의 평화와 안보(Peace & Security), 인권(Human rights), 발전(Development)을 세 축으로 한 'PHD 세계질서'를 이상으로 내세웠다.
  1986년 유엔 '발전권선언'에서는 '발전'을 확실한 인권으로 격상시켰다. 이른바 '제3세대 연대의 권리'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빈곤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의 발전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인이 되었다. 기후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발전은 고사하고 빈곤퇴치를 통한 형평성의 달성이라는 최소한의 목표도 사라질 수 있다. 많은 개도국에서 교육, 보건, 농업 지원 등 발전에 써야 할 예산과 자원을 기후위기의 여파를 처리하기 위해 전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남반구 개도국 특히 극빈국들은 식민 지배의 유산에다 기후위기의 부담까지 지고 있는 형편이다. 개도국 발전권을 위해서는 형평성, 에너지 접근성, 기술이전과 재정지원이 필수적이다. 여기에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재난 대응 역량, 생명과 재산 보존 역량 등의 사안도 발전권에 포함하여야 한다.

  식량권
  기후위기로 인한 가뭄, 홍수, 해충 등으로 농사를 망쳐 식량안보가 위협당하는 일이 전 세계적으로 대폭 증가했다. 2020년 동아프리카 일곱 나라의 메뚜기떼 습격 피해, 봄철 냉해와 기록적 물난리로 인한 농산물 가격이 앙등한 경험은 좋은 예다.
  세계은행은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지구의 기온이 2도 이상 상승하면 매년 1억~4억 명이 추가로 영양실조에 빠지고 300만 명 이상의 추가 사망자가 나올 것으로 추산한다. 개도국에서 여성 노동인구의 3분의 2,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여성 노동인구의 90퍼센트가 농업에 종사한다. 기후위기로 작황이 나빠지면 이들은 식량과 소득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는다.
  담수의 염류화, 사막화, 그리고 농업용수 부족도 식량권에 곧바로 영향을 준다. 식량 생산은 단순히 농업 부문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물 사용, 전체 에너지 사용과 연관된 '물-에너지-식량' 연계의 맥락에서 민감하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식량 문제는 나라의 발전 전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산품을 수출하고 농산품을 수입하는 무역구조를 가진 나라일수록 식량자급률이 떨어지고, 저렴하고 질이 낮고 불건강한 가공식품과 정크푸드가 시중에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

  물 권리와 위생권
  기후위기로 아열대의 대다수 건조지역에서 지표수와 지하수가 마르고 있다. 물 부족 사태는 선진국, 개도국, 농촌, 도시를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세계자원연구소가 2019년 발표한 물 부족 위험 국가 순위에 따르면 조사 대상 150개국 중 한국은 중상위 위험군에 속한 53위였다. 기후위기로 인해 단전, 단수 사태가 벌어지면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정부의 정치적 정당성이 흔들리게 된다.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는 2017년 수원지 저수량이 너무 낮아져 급수가 전면 중단될 수 있는 '데이 제로' 상황 직전까지 갔었다.
  기온이 2도 이상 오르면 전 세계 10억~20억 명이 물 부족을 겪게 될 것으로 추산된다. 물 부족 상황 때문에 특히 개도국에서 성인 여성과 여아가 더욱 먼 곳으로 물을 길으러 가야 하는 경우가 늘었고, 생리, 임신, 출산과 관련된 여성 고유의 위생 욕구가 침해되는 일이 잦아졌다. 인도차이나 지역은 2020년, 사상 최악의 가뭄으로 인한 식수와 농업용수 부족, 메콩강 수위 저하, 염분 침투로 인한 농업 황폐화 등으로 농민들의 생존권, 생계권이 박탈당하고 있다.

  주거권
  극한 기상이변으로 가옥이 파괴되면 사람들의 삶은 당장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 가뭄, 토양침식, 홍수와 같은 재해로 이산민과 이주민이 증가하고 버려진 땅은 사람이 거주하기에 부적합한 곳으로 전락하기 쉽다.
  해수면은 설령 지구가열화가 안정된다 하더라도 앞으로 수백 년 이상 계속 상승할 것이므로 저지대는 주거 불가능한 수몰 지역 또는 상습 침수 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전 세계에서 해수면이 1 센티미터 상승할 때마다 평균 100만 명이 피해를 입는다고 추산된다. 남태평양 섬나라 키리바시의 대통령은 바다에 잠길 섬나라 주민들에게 주거권을 포함한 주요 인권이 보장되는 '존엄을 갖춘 이주'가 확보되어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복지권
  기후변화 취약계층이란 기후현상에 노출되어 다른 계층과 비교해 그 피해가 심각하거나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나타나는 집단을 말한다. 이들은 지역의 환경 차이에 따라 지리적으로 다른 형태의 피해를 입는 경향이 있으며 건강, 돌봄, 생계, 노동, 교육, 사회적 지지망, 공공서비스 접근성, 재난 안전, 주거 조건 등 복합적인 사회권-복지권상의 불이익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제2차 '기후변화적응 기본계획(2019)'에서는 기후변화 적응과 관련한 기본 방향을 한국 사회의 기후 회복력 제고와 취약계층 지원 강화로 규정했다. 특히 기상이변으로 노년층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복지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노인 주거, 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 의료복지 관련 시설은 부족한 상태다. 복지권의 문제는 개별 권리침해의 문제로 보기보다 다양한 권리침해를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교육권
  교육권은 국가가 시민들에게 '지속적이고 전향적으로' 제공해줄 의무가 있는 권리이며, 그 자체로서 그리고 발전과 공동체 유지를 위해서도 중요한 권리다. 개도국에서는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교육예산을 삭감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그랬을 때 학령아동의 교육권이 침해받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 부양을 위해 미성년이 취업하는 경우가 늘면서 아동학대의 가능성도 늘어난다. 교육권의 박탈은 장기적으로 나라의 사회발전을 저해한다. 교육권과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문화유산 보전과 향유 권리' 역시 기후위기의 약영향을 받는다.

  스포츠 권리
  기후위기가 악화되면서 전 세계 스포츠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지구 기온이 상승하면서 겨울 스포츠 중 상당수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여름이 몇 달씩 지속되고 폭염 일수가 늘면서 선수들의 건강에 심각한 장애가 초래되고 있다. 야외 경기를 진행할 때 고온, 탈수, 일사병, 열사병에 걸릴 리스크가 높아졌다. 2020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산불로 모든 스포츠 행사가 중단되었고, 코로나19로 도쿄 올림픽이 연기되었을 정도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거의 모든 야외 스포츠, 특히 육상이나 마라톤 같은 경기는 진행이 불가능하다. 미세먼지로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운동장에 나가지 못하게 되면 정신적, 심리적 영향을 크게 받게 된다. 


                                                        < 탄소 사회의 종말 >에서 발췌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