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글쓰기

습관 유감

밭알이 2023. 5. 16. 12:00

  오늘도 손가락이 끌려갔다. 욕실 앞 콘센트에.

 

<'전원을 누른다'라고 몸이 기억하고 있다.>

 

  콘센트의 스위치가 고장 났다. 헤어드라이기 전원선 플러그가 늘 꽂혀 있는 콘센트다. 평상시에는 대기전력을 줄여 보려고 전기를 끊어 놓는다. 스위치는 몽땅 연필심만 한 두께로 콘센트 아랫부분에 돌기처럼 달려있다. 스위치는 두 개가 있는데 전원 스위치를 한 번 눌러 녹색이 되면 전기가 연결된다. 그 전원스위치가 삐뚜름하게 자리에서 벗어나 버린 것이다. 이곳에 온 지 3년 하고 8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아침저녁으로 허구한 날 눌러대니 못 버틴 모양이다.
  고장이 더 생기면 곤란해진다. 조심스레 전원스위치와 자동스위치를 번갈아 눌러 빨간불이 나오게 했다. 그렇게 하면 전기는 계속 공급된다. 더 이상 스위치를 눌러댈 필요가 없어진다.
  이렇게 설정한 지 한 달이 넘었다.

  그동안 내 검지 손가락은 매 번 스위치를 누르려고 움직였다. 가까이 접근하기도 했었고 막 움직이려다가 멈추기도 했다. 얼마 전부터 내 손가락의 이런 행동이 유감스러워졌다. 이런 행동의 DNA는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 걸까? 머리보다 빠른 반사적인 이 행동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
  한 번은 택배기사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1층에 도착했었다. 출구는 오른쪽이었는데 택배기사는 왼쪽으로 좌회전을 했다. 출구가 아님을 확인한 기사는 되돌아 서둘러 나갔다. 몸에 밴 행동이었을 것이다. 우습기도 했다.


  오늘, 내 손가락은 또다시 콘센트 앞에서 멈추었다. 이런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내 손가락을 보며 콧김을 내뱉으며 씨익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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