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가 제정된 지 800년이 되었다. 인권의 기원을 어디서부터 잡느냐는 항상 논쟁거리이지만 적어도 근대적 의미의 인권은 '마그나 카르타'를 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마그나 카르타' 즉 '대헌장'은 역사 속에서 인권의 상징어가 되었고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대헌장'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 우선 총 63조로 이루어진 '대헌장'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원칙을 담은 문헌이 아니다. 불만 가득한 영주들을 달래기 위해 왕의 잘못을 시정하겠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약속 이행 각서였다. 이 가운데 인권 발전 역사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조항은 모두 다섯 개다.
1조는 영국(잉글랜드) 교회의 자유와 권리를 규정했다. 영국과 로마 가톨릭교회 간의 해묵은 애증 관계를 읽을 수 있다. 13조는 런던을 비롯한 모든 시, 군, 구의 자유 특히 교역의 자유를 재확인했다. 서양의 지방 분권 전통이 원래 경제 활동의 자유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인권의 측면에선 39조와 40조가 특히 중요하다. 39조는 법에 근거하지 않고 자유민을 함부로 체포하거나 구금하지 못하고, 그의 권리나 소유물을 박탈하지 못하며, 범죄자 취급하거나 추방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 이 조항으로부터 훗날 '인신 보호 규정'이 도출되었다. 또한 피고는 '동등한 자유민들의 정당한 판단(lawful judgement of peers)'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함으로써 시민 배심원단에 의한 재판(trial by jury), 즉 '민주적 사법 집행'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나라의 법(law of the land)'을 지켜야 한다고 함으로써 이른바 '적법 절차의 준수'라는 근대적 인권 원칙이 시작되었다. 뒤집으면 국왕이라 해도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자유민은 그 누구도......(no free man......)"라고 한 부분은 훗날 '그 누구도 이러저러한 이유로......'라는 '반차별 원칙'으로 발전했다.
40조는 권리와 정의는 양도, 거부, 또는 지연될 수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인권의 '양도 불가 원칙(inalienability)'이 마련되었다. 마지막으로 61조는 영주들 중에서 25인의 대표를 뽑아 국왕이 헌장을 제대로 지키는지 감시하게끔 하고, 만일 헌장을 어길 경우 국왕의 부동산과 동산을 몰수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아주 엄격한 이행 규정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마그나 카르타'가 왜 중요한 인권 문헌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대헌장이 이처럼 획기적이었지만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영주, 기사, 자유민 등 전체 인구의 10퍼센트에게만 적용된 문헌이었기 때문이다. 1689년 명예 혁명 때 권리가 모든 사람에 적용되는 것으로 바뀌긴 했지만 이때도 여성은 제외되었다. 역설적인 측면도 있다. 대헌장의 원래 목적은 불만이 내전으로 터져 나오지 않도록 막기 위한 대증요법이었다. 봉건제의 전통을 수호하려는 것이 영주들의 주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후대에 와서 인권의 원칙으로 격상되었다. 수구적 동기가 혁신적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대헌장이 나온 후에도 인류는 거의 천 년 가까이 자유의 확대를 위해 투쟁해 왔고 그 투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크게 보면 인권이 진보한 것 같지만 권력의 지배욕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대헌장이 나온 영국에서조차 1998년 노동당 집권 때 제정된 인권법을 그 후 집권한 보수당이 폐지하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9.11 같은 사건이 발생하거나 인권과 거리를 둔 정권이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의 자유는 곧바로 후퇴하기 쉽다. 권력은 중력처럼 언제나, 영원히 인간을 억누른다. 한순간도 방심하지 말고 권력의 전횡을 감시하라는 명령이 '마그나 카르타'의 진정한 교훈이 되어야 한다.
<인권 오디세이>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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