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서 이미 알고 있는 터였지만 용정촌 역두에서부터 최서희의 콧김이 세다는 것을 혜관과 기화는 실감하며 걸음을 내딛는다. 혜관 뒤를 조르르 따라가는 기화는 불안전해 보인다. 기화는 오소소 떨며 한기를 느끼듯 마음이 추운 것이다. 혜관과 기화를 별채에 안내하라 일러놓고 서희는 생각에 빠져든다. 봉순아! 부르며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서희는 그리운 정을 손아귀 속에서 뭉개버린다. 확고부동한 권위의식이 잠시 동안 거칠었던 숨결을 잠재워준다. '하인과 혼인을 했다 해서 최서희가 아닌 것은 아니야. 나는 최서희다! 최참판댁 유일무이한 핏줄이다!' 권위의식의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그것은 서희의 불도 살라 먹으려는 무서운 집념이다. '오래간만이군, 봉순이.' '애기씨!' 서희의 손은 싸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