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순이 5

19 길상, 서희와 봉순이의 만남

불이 환하게 비쳐 나온 서희 방을 향해 길상은 다가간다. 방엔 팽팽하게 불빛이 들어찬 것 같고 넘쳐서 굴러 나올 것만 같은 긴장감을 길상은 느낀다. 신돌 아래서 기침을 한다. 그리고 방 앞에 가서, "들어가도 좋소?" "네." 짤막한 서희의 대답이다. 방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봉순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방님, 오래간만이오." 조용한 음성, 조용한 몸가짐, 역시 봉순은 기생이었다. 서희는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래간만이군. 그간 별일 없었겠지?" 길상은 엄청나게 변모한 봉순에게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별일이 없었느냐는 말도 실수였고, 봉순은 배시시 웃었다. "별일이 왜 없었겠습니까?" 길상도 실소한다. "앉지." "네." 비로소 길상은 서희에게 눈길을 돌린다. "속이 안 좋다고 했는데 괜찮소?..

18 서희와 봉순이의 해후

"그건 그렇고, 길상이는 지금 이곳에 있지 않소이까?" 혜관은 비로소 말을 중단하고 기화에게 재빠른 시선을 던진다. "서방님께서는 회령 나가셔서 안 계시오. 내일께나 오실는지요." 기화의 머리가 앞으로 확 수그러지고 혜관은 파리 잡아먹은 두꺼비처럼. 혜관이나 기화가 다 같이 예상했던 대로다. 그러면서도 충격이었다. 능글맞은 혜관도 숨이 막히는 듯 짓눌린 한숨이 가느다랗게 새어 나왔다. "그러면은 스님께선 별채에 가셔서 쉬시겠소?" 서희가 침묵을 잡아젖혔다. "쉬기보담 허기부터 달래야겠소." 혜관은 얼버무린다. "네. 저녁을 곧 올리도록 하겠소. 봉순인 나랑 함께......." "네." 기화 얼굴은 온통 눈물에 젖어 있었다. 혜관이 부산스럽게 나간 뒤, "애기씨!" "응." 서희 눈에 처음으로 눈물이 핑 ..

11 월선, 김서방댁과 봉순이의 서로 위로하는 대화

월선의 집에 이른 봉순이는, "아지매요!" 하고 부르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추위에 입술이 굳어져서 목소리가 작았다. 방 안에서 도란도란 씨부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지매요!" "누고오!" "나 봉순이오!" 얼른 방문이 열린다. "아이고오, 봉순이구나. 이 칩운 날에 니가 우짠 일이고. 어서 들어오니라." "봉순이가 왔다고?" 월선이 뒤에서 김서방댁의 거무튀튀한 얼굴이 나타났다. "김서방댁!" 방 안으로 들어선 봉순이는 그만 울음을 터뜨린다. "와 이라노. 봉순아." 월선이는 딱해하며 봉순이 등을 두드리고 김서방 댁은 입을 비죽비죽하다가 함께 따라서 눈물을 흘린다. 자기도 울면서 우지 마라, 하며 때 묻은 치맛자락을 걷어 눈물을 닦는다. 김서방 댁의 행색은 말이 아니었다. "김서방댁은 우찌 사요." 겨..

1부 5편 떠나는 자, 남는 자

행랑 쪽 모퉁이로 길상이 급하게 뛰어간다. 봉순이도 급히 걸어가고 김서방 댁도 엉기정엉기정 따라간다. 수동이 거처방에서 울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수동이는 눈을 뜬 채 죽어있다. 조준구와 홍 씨는 속이 후련해지며 희희낙락이다. 불리해지는 현실 가운데 서희는 포악스럽고 의심이 많아지고 있다. 반면, 제 나이를 넘어선 명석함으로 사태를 가늠하는 냉정함이 도사리고 있었다. 봉순이는 길상을 깊이 사모하지만 길상은 봉순이를 피하는 것이 완연했다. 한편, 봉순이는 다른 꿈을 좇고 있다. 평생을 비단옷에 분단장하고 노래 부르며 사는 세상, 그곳으로 끌려간다. 한 번은 길상이 니 겉은 화냥기 있는 가씨나는 싫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길상이는 후회했지만, 봉순이한테 깊은 상처,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주게 되었다. ..

1 봉순이의 노래

봉순이는 연못 속에 퐁당퐁당 돌을 넣으면서 흥얼거리고 있었다. 하늘은 유리알같이 맑게, 햇빛이 그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삼월아! 나 업어주어." 서희가 쫓아왔다. "그러지요, 애기씨." 삼월이는 얼른 툇마루에서 일어나 서희에게 등을 내밀었다. 삼월이는 서희를 업고 뜨락을, 왔다갔다 하면서 봉순이를 따라 흥얼흥얼하더니 뚝 끊는다. 봉순이는 더늠으로 심청가 중의 걸유육아의 대목을 부르고 있었다. 아가아가 우지마라 너의모친 먼데갔다 낙양동촌 이화정에 숙낭자를 보러갔다 황릉묘 이비한테 회포말을 하러갔다 너도너의 모친잃고 설움겨워 우느냐 우지마라 우지마라 너팔자가 얼매나좋면 칠일만에 어미잃고 강보중에 고생하리 우지마라 우지마라 해당화 범나비야 꽃이진다 설워마라 명년삼월 돌아오면 그꽃다시 피나니라 삼월의 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