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환하게 비쳐 나온 서희 방을 향해 길상은 다가간다. 방엔 팽팽하게 불빛이 들어찬 것 같고 넘쳐서 굴러 나올 것만 같은 긴장감을 길상은 느낀다. 신돌 아래서 기침을 한다. 그리고 방 앞에 가서, "들어가도 좋소?" "네." 짤막한 서희의 대답이다. 방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봉순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방님, 오래간만이오." 조용한 음성, 조용한 몸가짐, 역시 봉순은 기생이었다. 서희는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래간만이군. 그간 별일 없었겠지?" 길상은 엄청나게 변모한 봉순에게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별일이 없었느냐는 말도 실수였고, 봉순은 배시시 웃었다. "별일이 왜 없었겠습니까?" 길상도 실소한다. "앉지." "네." 비로소 길상은 서희에게 눈길을 돌린다. "속이 안 좋다고 했는데 괜찮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