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개_이외수 2

'언어의 묘미'의 예 - 이외수 편

O 때때로 바람의 완강한 팔뚝에 머리채를 움켜잡힌 채 한 줄로 서서 쓰러질 듯 쓰러질 듯 버티고 있는 가로수들, 이따금 날개를 접질리운 새들처럼 휴지들이 높이 솟구쳤다간 곤두박질을 치고 있었다. O 내 잠의 막은 언제나 얇고도 희미해서 현실과 잠사이에 가로놓인 한 장의 미농지 같았다. 비록 잠들어 있는 상태라 해도 항시 잠 바깥에 있는 것들이 막연하게 잠 속에 비쳐 들어와 어른거리곤 했다. O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한없이 풍성하게 부풀어올라 햇빛 속에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새로 따낸 목화송이를 잘 손질해서 하늘에 가득가득 쌓아놓은 것 같았다. 나는 그 푹신한 곳 깊숙이 뛰어들어 끝없이 깊은 잠에 빠져들고 싶었다. O 비는 아주 지리한 소리로 땅을 적시고 있었다. 영원히 그 템포를 잃지 않고 지리하게지리하..

<들개> 요약

시를 감상하듯 한 번 더 읽었다. 아니, '시를 감상'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그냥 한 번 더 읽었다. '내 소설 또한 감상되기를 바라며 결코 설명되기를 바라지는 않는' 지은이의 말 때문이었다. 이야기로 읽다가 여러 묘사를 되짚어 읽다가 장면을 그려보며 읽다가 다시 이야기로 읽기가 반복되었다. 오랜 기간 건조한 문장의 독해에 집중하며 읽던 시각과 머릿속 구조가 거북해한다. '문학'과 동떨어진 내 모습을 보게 된다. 한 여자가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일들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금후 살아갈 일들에 대해서도 나는 아무 의미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24쪽)' 그 여자는 '밤이면 잠이 오지 않았다. 그것은 정말 가혹한 형벌이었다. 내의식은 언제나 질식한 채 어둠 속에 허옇게 떠 있었다(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