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노인 2

2부 4편 용정촌과 서울

들어서 이미 알고 있는 터였지만 용정촌 역두에서부터 최서희의 콧김이 세다는 것을 혜관과 기화는 실감하며 걸음을 내딛는다. 혜관 뒤를 조르르 따라가는 기화는 불안전해 보인다. 기화는 오소소 떨며 한기를 느끼듯 마음이 추운 것이다. 혜관과 기화를 별채에 안내하라 일러놓고 서희는 생각에 빠져든다. 봉순아! 부르며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서희는 그리운 정을 손아귀 속에서 뭉개버린다. 확고부동한 권위의식이 잠시 동안 거칠었던 숨결을 잠재워준다. '하인과 혼인을 했다 해서 최서희가 아닌 것은 아니야. 나는 최서희다! 최참판댁 유일무이한 핏줄이다!' 권위의식의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그것은 서희의 불도 살라 먹으려는 무서운 집념이다. '오래간만이군, 봉순이.' '애기씨!' 서희의 손은 싸늘..

2부 1편 북극의 풍우

1911년의 오월, 용정촌 대화재는 시가의 건물 절반 이상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용이와 길상이를 포함한 서희 일행은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인 절로 피신했다. 일본 통감부 파출소의 협조를 받는 사찰 건립에 서희가 적지 않은 금액을 희사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피난민은 빈터에 막이나 쳐서 추위를 피한다. 양미간에 꼬막살을 잡히고 있는 서희는 길상이를 부른다. 이 부사 댁 서방, 이상현의 소식을 묻는다. 집이 불바다가 됐는데도 찾아오지 않는 상현에게 화가 난 것이다. 길상이는 용정촌에서 손꼽히는 명망가 송병문 댁에 들어 지내는 상현을 찾아간다. 상현은 김훈장과 같이 있다. 전에 상현의 부친 이동진이 군자금을 서희에게 요청하였는데 거절을 당했다. 반면, 서희는 사찰에 희사했고 이를 김훈장은 분해하였고, 상현은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