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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적 리스크와 경합 중인 두 가지 대안

밭알이 2023. 10. 6. 12:00

  '파국적', '재앙적' 등의 표현으로도 부족해서 이제 기후위기는 인류의 생존 자체에 의문을 던지는 '실존적' 위협으로 묘사된다. '실존적 리스크'가 정확히 무슨 뜻인가? 이 주제를 오랫동안 천착해온 옥스퍼드대학의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은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실존적 리스크는 지구에서 기원한 지성적 생명체의 때아닌 멸종을 위협하거나, 그 생명체의 바람직한 미래 발전을 위한 잠재성을 영구적이고 급격하게 파멸시킬 수 있는 리스크를 말한다. (...) 이 문제를 연구한 대다수 학자들은 21세기에 완전히 실존적인 리스크가 발생할 확률을 10~20퍼센트 정도로 추산한다."

  실존적 리스크가 이번 세기 내로 인류가 다 없어질 수 있는 위험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보스트롬도 지적하듯이 이른바 '정상적'인 삶의 양식이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 '발전'의 잠재성이 사라진 상황, 심각한 문제들이 일시에 터져 나와 사회질서가 흔들리는 상황도 실존적 리스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가 실존적 위협의 상황까지 와도, 모든 사람이 그것을 지구고온화로 인해 발생한 위기라고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은 사회적으로 형성된 가치관에 의해 결정되므로 그 어떤 '객관적' 위기 상황도 자동적으로 위기라고 인정되지는 않는다.

  기후위기가 전정으로 '위기'가 되려면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그것을 '위기'로 간주해야만 한다.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이미 생살여탈권을 지닌 현실인 반면, 위기의 후방에서 안락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후위기란 뉴스에 나오는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 기후위기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진다. 후자와 같은 사람이 절대다수라면 기후문제의 대처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기후위기에 대한 대처의 출발점은 우리가 기후문제의 책임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 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즉 기후위기의 최종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일이 21세기 실존적 논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크게 보면 탄소 에너지 사용이 근본 원인인지, 무한성장을 가정하는 자본주의 발전모델이 근본 원인인지가 대립한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면서도 강조점이 다르다. 단순하게 말해 전자를 강조하면 탄소 에너지만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면 된다. 후자를 강조하면 발전 체제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두 가지 대안적 경로가 경합 중이다.
  첫째, '녹색 경제로의 신속한 이행을 추구하는 노선'에서는 탈탄소 에너지 생산과 효율적인 기술개발, '생태적 근대화'로 기후위기를 신속히 벗어날 수 있다고 가정한다. 녹색 경제로의 이행 아이디어 중 대표적인 것이 그린뉴딜이다. 탈탄소 에너지 전환, 대규모 공공투자, 고용창출 등으로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발상이다. 한편, '저탄소' 경제로 이행하고 기후위기의 진행 상태를 잘 조절하면 미래가 상당히 낙관적일 수 있다고 보는 약한 버전의 그린뉴딜도 있다. 녹색경제론은 기존 경제사회 체제의 목표와 가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것의 이행 수단을 바꾸는 '수평적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했을 때 기온 상승을 획기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 질문에 대해 확고한 대답을 하기 어렵다.
  둘째, '탈성장 노선'은 기술적 방식으로 경제 운용의 수단만 교체하는 것을 반대한다. 오히려 경제, 사회, 문화 시스템 전체가 기존의 성장 체제적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 패러다임에서는 경제의 생산과 소비가 늘면 인간의 계발과 포부도 함께 상승한다고 가정했었다. 그러나 탈성장 노선에서는 경제성장과 인간 계발 사이의 관계를 분리한다. 요컨대, 경제성장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어야만 진정으로 민주적인 인간-사회-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수직적 전환'이라 할 수 있다.

  녹색 경제와 탈성장 중 어느 노선이 기후위기의 대응에 적절한지를 놓고 세기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유엔사무총장의 의뢰로 유엔 지속가능성 보고서 작성을 위한 기본 토론 자료를 제공한 핀란드의 연구 팀은 기존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방식 내에서는 아무리 개선책을 내보아도 궁극적으로 지속가능한 체제로의 전환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실존적 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 시대에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 그것도 화급한 필수 조건이 되었다. 그리고 전환의 목표는 '지속불가능성의 근본적 해체'라고 할 수 있다.
  '녹색 전환'을 주창하는 최병두에 따르면 두 단계의 전환을 거쳐 탈성장으로 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우선, 자연에 대해 인간의 의식 전환이 있어야 한다. 자연을 인간 사회와 분리해 지배의 대상, 성장의 수단으로만 인식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사회경제 전반의 체제 전환이 있어야 한다. 자연의 사적 독점과 기업 중심의 산업화를 넘어 "공정한 배분과 시민사회의 생활 경제에 기반한 사회경제 체제를 지향"해야 한다. 어쩌면 탈탄소 경제로의 수평적 전환과 탈성장으로의 수직적 전환을 병행하여, 통합적인 '지속불가능성의 해체'를 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 탄소 사회의 종말 >에서 발췌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