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저물고 길상은 자리에 쓰러진 후 얼마쯤 지나 눈을 뜬다. 부신 눈에 흰 버섯 같은 두 개의 얼굴이 보인다. 아내와 둘째 아들, 생후 육 개월 된 윤국의 잠든 얼굴이다. 길상은 유모 곁에서 꼼짝 않고 잠들었을 큰아들 환국이를 생각한다. '하나는 내 목을 감고 둘은 각각 내 한 팔씩을 감고, 그러면 나는 꼼짝할 수 없지. 꼼짝할 수 없구말구.' 답답하다. 서희는 금년은 아니어도 명년에는 돌아갈 것이다. '내가 왜 거길 가나. 뭣하러 돌아가나.' 길상의 마음은 복잡하다. 지금까지,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만은 길상은 타인이었다. 오 년 동안, 서희가 독단으로 일을 진행해왔었다. 서희는 서희대로 얼마나 외로웠을 것인가. 정체 모른 근심이 서희를 어지럽히고 있다.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으로 입술을 굳게 다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