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희 2

15 서희와 길상의 다툼

길상은 말을 뚝 끊고 고개를 숙인다. 조는가 했더니 자맥질하던 해녀같이 얼굴을 치켜세운다. 몽롱한 취안이다. 씩 웃는다. "최서희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어? 흥, 천하를 주름잡을 텐가? 어림도 없다!" 어조를 싹 바꾸며 반말지거리다. 장승처럼 서 있는 서희 얼굴에 경련이 인다. "넌 일개 계집아이에 지나지 않단 말이야! 거 꿈 하나 거창하지. 아무리 돼지 멱따는 소리 질러봐야 이곳에 구종별배도 없고 으음, 있다면 왜놈의 경찰이 있겠구먼. 흥, 그 새 뼈가지 몸뚱이로 어쩔 텐가? 난 지금이라도 널 희롱할 수 있어. 버릴 수도 있고 흙발로 짓밟을 수도 있고 가는 모가지를 비틀어 죽일 수도 있다 그 말이야. 나 술 안 취했어. 내 핏속엔 술이 아니고오, 음 그렇지 그래. 대역죄인의 피가 흐르고 있을 게야. 아..

2부 1편 북극의 풍우

1911년의 오월, 용정촌 대화재는 시가의 건물 절반 이상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용이와 길상이를 포함한 서희 일행은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인 절로 피신했다. 일본 통감부 파출소의 협조를 받는 사찰 건립에 서희가 적지 않은 금액을 희사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피난민은 빈터에 막이나 쳐서 추위를 피한다. 양미간에 꼬막살을 잡히고 있는 서희는 길상이를 부른다. 이 부사 댁 서방, 이상현의 소식을 묻는다. 집이 불바다가 됐는데도 찾아오지 않는 상현에게 화가 난 것이다. 길상이는 용정촌에서 손꼽히는 명망가 송병문 댁에 들어 지내는 상현을 찾아간다. 상현은 김훈장과 같이 있다. 전에 상현의 부친 이동진이 군자금을 서희에게 요청하였는데 거절을 당했다. 반면, 서희는 사찰에 희사했고 이를 김훈장은 분해하였고, 상현은 모..